삼성전자가 연말에 진행할 차세대 D램 양산을 연초부터 공개한 것은 메모리 분야에서 리더십을 지켜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초격차 기술로 일단 라이벌들의 기세를 꺾은 뒤 압도적인 생산 능력으로 원가를 낮추면서 동시에 수요에 대응하는 삼성의 전매특허 전략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여기에 더해 비장의 무기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 3D D램 등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기술과 생산 능력 다잡는다=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45%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한 자타 공인 메모리 1위 회사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전략의 핵심에서는 라이벌 회사보다 한참을 앞서나간 기술로 초격차 선두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삼성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5세대 D램에서 경쟁사와 똑같은 극자외선(EUV) 기술을 쓰면서도 현존 최대 용량인 32기가비트(Gb)를 가장 먼저 구현하기도 했다. 장비를 뛰어넘는 생산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말 양산하게 될 10나노 D램에도 EUV는 물론 기억 소자에서 전하 알갱이가 새어나가는 것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하이-K 메탈게이트(HKMG) 등 최고의 기술을 총집결한 제품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 리더십을 차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개발에서 이어지는 압도적인 생산 능력 확보다. 삼성전자는 호황기였던 2022년 기준 월 67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했다. 당시 D램 2위 SK하이닉스(월 41만장)보다 생산 능력이 60% 이상 차이가 났다.
풍부한 생산 능력은 원가 절감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메모리 사업은 생산 능력이 뛰어날수록 단가 경쟁에서 유리해져 이윤을 더욱 많이 남길 수 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는 10나노급 6세대 제품에 대한 양산 준비가 끝나면 빠른 속도로 첨단 생산 라인을 갖춰 경쟁사보다 빠르게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감산 영향으로 월 45만 장까지 줄였던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D램 생산량을 월 70만 장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평택 공장 등 거대한 생산 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HBM 라인 확충에 집중하고 있는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범용 D램 호황 사이클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해 설비 증설에서 10나노급 4세대, 5세대 D램보다 6세대 D램 투자에 더욱 집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원가를 끌어내려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포석”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D램 기술도 출격 대기=삼성전자는 범용 D램 외에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주목 받는 D램 기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9년 HBM 개발팀 해체로 SK하이닉스에 지금까지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뼈아픈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우선 삼성전자는 최근 AI 시대에서 가장 각광 받는 HBM 메모리 생산 라인을 빠르게 증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월에만 해도 기존 생산 능력보다 2.5배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지난달에는 2.9배 늘리는 것으로 목표치를 수정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차세대 HBM 제조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16단 HBM 샘플까지 만들면서 역전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HBM과 연산 장치 간 병목현상을 줄이는 HBM-PIM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설치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CXL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CXL 모듈인 △삼성 CMM-D △삼성 CMM-DC △삼성CMM-H △삼성 CMM-HC 등 4개 상표를 출원했다.
D램 칩을 쌓는 것이 아닌 D램 내부에서 기억 소자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D램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D D램의 초기 버전인 수직채널트랜지스터(VCT) D램을 내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뒤 2030년께 3D D램 상용화에 도전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소자 구조를 적용한 D램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수년간 위협을 받았던 초격차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