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 3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통과된 경제협력법에 서명했다. 이로써 2차대전으로 황폐해진 서유럽의 동맹국 재건을 위한 유럽 부흥 계획이 실행 단계에 진입했다. 제창자인 조지 마셜 국무부 장관의 이름을 따 ‘마셜 플랜’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계획은 미국 경제의 복구, 유럽 재건,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동시에 겨냥했다. 서유럽의 경제 부흥을 통해 전체주의의 싹을 억제하고 미국의 수출을 늘려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유럽 부흥 계획은 1947년 6월에 처음 제안됐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들에도 원조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소련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정치 개혁과 외부의 감독이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이탈리아와 스웨덴을 포함한 16개국이 참여하는 유럽경제협력위원회가 상세한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1949년에 탄생한 서독도 대상에 추가됐다.
마셜 플랜 발표 이후 출범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는 서유럽의 경제 통합을 도모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지급동맹(1950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2년), 유럽경제공동체(1958~1959년)가 차례로 탄생했다. 유럽경제협력기구는 미국과 캐나다까지 받아들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확대 개편됐다.
미국은 마셜 플랜을 통해 동맹국에 4년간 130억 달러 이상의 경제와 기술을 지원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300억 달러를 넘는 규모였다. 최대 수혜국은 영국이었으며 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도 각각 10억 달러 이상의 혜택을 봤다. 이후 20년간 서유럽 국가들은 유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누렸다. 동북아시아의 일본도 서독에 못지않은 수혜자가 됐다. 이와 동시에 마셜 플랜은 냉전의 심화도 초래했다. 서방 국가들의 집단 안보 체제 강화를 목표한 트루먼 독트린과 맞물려 지구적 차원에서 체제 경쟁이 격해졌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신냉전의 분위기 속에 논의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재건 계획이 ‘21세기 마셜 플랜’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