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는 다른 목관 악기와 달리 여려요. 제 곡이 슬프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아름다웠구나’ 추억하는 느낌인데 하모니카도 들으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게 있어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김형석 작곡가)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신승훈의 ‘I believe’ 등 1990년대~2000년대를 풍미한 김형석 작곡가의 명곡들이 수십년 만에 하모니카의 선율로 태어났다. 국내 1세대 하모니시스트(하모니카 연주자)인 박종성씨의 새 앨범 ‘그대, 다시’를 통해서다. 김 작곡가는 수록곡 ‘사랑이라는 이유로’에 피아노 연주로 참여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학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박종성 하모니시스트는 “평소 클래식 음악을 주로 연주하다가 이번에 대중음악으로 확장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1순위로 김형석 작곡가님의 곡들을 꼽게 됐다”며 “김 작곡가님의 곡들의 선율을 빌려 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에서는 고명 역할이었던 하모니카가 단독 악기로 우뚝 서 박 하모니시스트가 온전한 자기 표현을 하게 된 데는 김 작곡가의 영향이 컸다. 김 작곡가는 곡 선정부터 해석, 편곡, 녹음 등에 이르는 과정에서 박 하모니시스트에게 전권을 줬다. 예상했던 작업 방식과 달라 두려웠지만 김 작곡가가 믿어준 만큼 스스로의 색채를 충분히 내보자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박 하모니시스트는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가장 큰 고민은 ‘대중 음악처럼 연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저만의 하모니카 어법을 가져갈 것인가’였다”며 “김 작곡가님의 곡을 하모니카로 연주했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박종성의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모니카 어법을 그대로 적용해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작곡가는 “최대한 연주자의 해석이나 기준에 맡기는 작업이었으면 했다”며 “클래식은 악보에서 음 하나만 빼도 어색해지지만 대중음악은 그런 데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주가 감동을 주려면 진정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서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이번 앨범을 낸 뒤 내달 31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합동 공연을 펼친다. 이번 작업은 김 작곡가에게도 의미가 컸다. 그는 “하모니카는 솔로 악기로서는 소박함, 진솔함이 가장 맞닿아있는 악기이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악기”라며 “쉰이 넘어가니 남은 인생을 역산하게 되고 소박해지고 추억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작업이 제 지금 시기에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하모니시스트는 우리나라의 1세대 하모니카 연주자로 꼽힌다. 하모니카 전공이 없던 시기에 처음 전공자로 입학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하모니카를 전공까지 해야 하느냐’ ‘우리 아버지도 하모니카 잘 분다’ 등 시선들이었다. 그는 “지금은 전공생이 스무명까지 늘어났지만 아직도 일본, 대만 등에 비해서는 턱 없이 적은 규모”라며 “전문 연주자들이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 때문에 악기를 그만두는 게 당연한 사회적, 교육적 분위기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