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 경기의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삼성E&A(옛 삼성엔지니어링)와 GS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조 원에 가까운 수주 잭팟을 터뜨리면서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건설 기업의 해외 수주는 최근 몇 년간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유가 하락 등으로 중동 플랜트 사업의 발주 자체가 급감한 데다 고금리 등으로 자금 조달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연평균 해외 건설 수주액은 304억 달러 수준으로 2010~2014년 평균(650억 달러)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분위기 반전이 감지되고 있다. 유가가 본격 반등하면서 중동 지역 산유국들이 발주 확대에 나서고 있고 정부도 민관 합동 해외 수주 지원단인 ‘원팀코리아’를 통해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세일즈 외교가 건설 업계의 해외 수주에 지렛대로 작용하고 있다. 대규모 발주가 예정된 상황에서 정부 주도의 수주 지원 전략이 이번 수주에서 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사우디를 국빈 방문해 건설·인프라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같은 협력 강화 합의가 삼성E&A와 GS건설 수주에 중요한 기폭제로 작용한 셈이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아람코·네옴 등 사우디 주요 발주처의 메가 프로젝트 수주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포문을 연 것은 현대건설이다. 지난해 6월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가 발주한 50억 달러(약 6조 4000억 원)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사업(아미랄 프로젝트)을 수주했다.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삼성E&A와 GS건설이 아람코로부터 9조 6000억 원 규모의 ‘파드힐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공사 계약을 따냈다. 국내 건설사가 사우디에서 수주한 공사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이 공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 북동쪽 350㎞에 위치한 파드힐리 가스 플랜트 설비를 증축하는 사업이다. 삼성E&A는 가스 처리 시설을 짓는 패키지 1번, 유틸리티·부대시설을 건설하는 패키지 4번을 맡는다. GS건설은 가스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을 포집하고 재활용하는 시설을 짓는 패키지 2번 공사를 담당한다. 이번 수주로 올해 들어 이달 2일까지 해외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61억 1000만 달러)의 2배를 넘은 127억 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중동 국가들의 플랜트 발주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러시가 재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오일·화학 부문 공종 발주 규모는 각각 671억 달러, 533억 달러에 달해 전년보다 각각 483%, 15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람코의 올해 발주 규모는 6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조정현 IBK투자증권 건설 담당 연구원은 “올해 MENA 지역 발주가 지난해보다 더 클 것”이라면서 “특히 국내 건설사들의 주력 분야인 화학제품 시설 공사 프로젝트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에 본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건설사의 수주 잔액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수주 승전보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건설은 올 2월 총사업비 18조 7000억 원 규모의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자력발전소 신규 공사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최종 수주 계약은 이달 체결될 것으로 보이며 현대건설의 수주 금액은 약 7조~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E&A는 올해 사우디를 넘어 화공 분야에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서 10억~2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주를 따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 400억 달러, 누적 수주액 1조 달러’라는 정부의 목표치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해외 건설 누적 수주 금액은 9659억 달러다. 올해 400억 달러를 달성하면 1조 달러 고지를 넘게 된다.
정부도 민간기업의 수주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해 스마트시티 등 해외 도시개발 분야로 수주 판로를 넓혀 수주액을 쌓아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국토부는 최근 미국과 파나마에 인프라협력단을 파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