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트럼프 재판과 사법 정의  

제니퍼 루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총 90여 건에 달하는 범죄 혐의로 네차례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이 끝모르게 연기되고, 자산가치 조작 등의 사기혐의로 뉴욕맨해튼지방법원이 선고한 막대한 벌금 또한 항소법원에 위해 축소되자 미국인들 사이에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변호인단은 상상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재판절차를 최대한 뒤로 미루는 지연작전을 구사한다. 물론 트럼프에게 전직 대통령 겸 차기 대통령후보라는 특수한 지위와 천문학적 액수의 법률비용을 감당할 재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법적 승리를 거뒀다. 뉴욕항소법원은 뉴욕지법의 판결에 따라 트럼프가 공탁해야 할 4억6400만 달러의 벌금을 1억7500만 달러로 낮추고, 10일간의 말미를 줬다. 거액의 공탁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트럼프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형사소송 측면에서 트럼프 변호인단은 재판 일정을 늦출 목적으로 법적근거가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연이어 제기했다. 플로리다연방법원의 기밀문서 유출 재판에서 트럼프측은 재판진행을 사실상 완전히 멈춰세웠다. 트럼프가 임명한 아일린 캐넌 연방지법판사가 변호인측이 제기한 검찰 공소기각 신청을 심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법률팀이 단골메뉴로 사용하는 억지 지연전술임을 모를 리 없었음에도 캐넌 판사는 변호인측에 브리핑을 요구하고, 그들의 구두변론까지 경청한 후에야 청구를 기각했다.



제11연방순회항소법원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플로리다지법의 기밀문서 유출 재판은 수 개월간 추가로 지연될 수 있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일단 배심원단이 꾸려지면 캐넌 판사의 그릇된 결정 하나만으로 검찰측이 소송을 이어갈 방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국가안보를 훼손하고 수사를 방해한 책임에서 벗어난다. 이 경우 우리는 사법시스템이 지닌 ‘이중잣대’의 진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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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 풀턴 카운티에서 진행되는 대선 뒤집기 혐의 관련 형사소송에서 트럼프와 그의 법률 하수인들은 최근 엇갈린 성과를 올렸다. 패니 T. 윌리스 풀턴 카운티 검사장(민주)은 트럼프 변호인단이 제기한 허울좋은 기피신청을 견뎌냈지만 이로 인해 재판일정이 지연됐다. 윌리스 검사장은 8월 중 재판을 시작하자고 요청하겠지만 사안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더 많은 준비기일어 필요하다는 변호인단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재집권에 실패한다 해도 2025년에야 배심원단과 마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1월 6일의 의사당 폭동사건으로 이어진 트럼프의 대선 뒤집기 혐의 관련 형사재판이 어디쯤 와 있는지 살펴보자. 연방대법원의 느긋한 행보에도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통령의 완전한 면책특권에 관한 결정은 아무리 늦어도 6월 중에 나올 것이다. 대통령이 재임중 저지른 범죄에 연방대법원이 면죄부를 줄 것으로 예상하는 법조계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트럼프의 필사적 방해공작에도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법정으로 향하는 케이스도 있다.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방검사장이 이끈 수사팀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회사비용으로 지급한 성추문 임막음 돈을 기업장부에 법률 자문료로 허위기재한 문서위조 의혹을 파헤쳐 사상 처음으로 전 대통령을 형사기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맨해튼형사법정의 후안 메르찬 판사도 법 아래 평등한 정의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메르찬 판사는 트럼프의 근거없는 면책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실관계 입증에 필요한 증거 차단 시도를 막아냈다.

요약하자면 일부 트럼프 재판은 대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트럼프는 마라라고(트럼프 개인 별장) 기밀문서 반출 및 불법 저장혐의를 털어낼 수도 있다. 뉴욕 민사재판의 벌금 액수 역시 대폭 축소될지 모른다. 트럼프보다 주머니가 가벼운 피고인은 도저히 누리지 못할 행운이다. 그러나 워싱턴 D.C.와 맨해튼연방지법의 강골 판사들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중요한 민사소송건 역시 더 이상의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다.

앞으로 3주 이내에 전직 대통령은 그토록 오랫동안 악착같이 피하려 했던 형사법정에서 배심원단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오직 유권자들만이 법망에 사로잡힌 트럼프를 빼낼 수 있다. 골수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11월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트럼프는 법의 그물망을 찢고 멀쩡히 빠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법정의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유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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