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리튬값 떨어져도 비축 안해…경쟁력 약화에 주력품목 성장 둔화

■수출 '이상 신호'…원자재·중간재 수입 급감

석유화학·건설경기 등 부진 영향

中 경합도 높은 산업재 수입 뚝

제조사들도 설비 해외로 옮겨

국내 인프라·R&D 지원 절실

컨테이너가 1일 부산항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컨테이너가 1일 부산항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




2차전지의 핵심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액이 급감한 것은 최근 무역구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 쏠림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15대 수출 품목 가운데 절반가량은 성장세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2차전지 등 중국과 경쟁이 치열해진 부문과 관련해서는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2월 산화리튬과 수산화리튬의 경우 수입액이 75.3% 감소했고 니켈·코발트·망간 수산화물 역시 41.2%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리튬값이 고점 대비 70% 빠졌고 니켈값도 30~4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산화리튬과 수산화리튬 등의 국제가격이 크게 떨어졌는데 국내 주요 기업들은 사전에 비축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입량을 줄였다. 수입 중량을 살펴보면 국내로 들어오는 산화리튬·수산화리튬, 니켈·코발트·망간 수산화물이 각각 5.7%, 18.3% 줄었다. 2차전지의 핵심 중간재 수입이 급감하면서 수출도 덩달아 줄었다. 지난달 2차전지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3% 감소한 6억 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이들 2차전지 소재 수입량의 감소가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수요 감소)’ 등 일시적인 경기 요인과 관련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 무역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외의 몇몇 산업에서는 경기회복세가 더딘 부분이 있다”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중간재 수입 감소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산업부 역시 “올 2분기까지로 예상되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재고 조정 기간이 끝나면 2차전지 수출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수입 업계에서는 중국의 기술력 강화 등에 한국의 무역구조가 전반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2차전지만 해도 중국과의 경쟁 심화가 최대의 화두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합산 점유율은 48.7%로 1년 전보다 5.3%포인트 하락했다. CATL 등 중국계 배터리 기업들이 자국 외에서도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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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분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석유화학제품 원가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나프타의 수입액은 4.7% 줄었다. 주요 매출처였던 중국이 2020년께부터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급격히 증설한 여파가 컸다. 실제로 지난달 기준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185.4달러로 손익분기점(톤당 30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에틸렌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값으로 석유화학 기업들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로 꼽힌다.

이를 반영하듯 석유화학 수출액도 지난달 2.2% 감소한 40억 3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석유화학은 한국에서 네 번째로 수출 규모가 큰 산업이다. 15대 수출 품목 전체를 놓고 봐도 3월 수출이 줄어든 곳은 석유화학·2차전지를 비롯해 자동차(-5%), 일반기계(-10%), 철강(-7.8%), 자동차 부품(-6.8%), 섬유(-14.3%), 가전(-1.7%) 등 8개나 됐다. 반도체를 제외한 15대 품목의 수출액은 지난달 기준 44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3% 감소했다.

내수 경기 부진도 산업재 수입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철강의 경우 1~2월 기준으로 수입액이 전년 동기보다 9.3%나 감소했다. 철강 수요가 많은 건설 업계를 중심으로 철강 수입이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컨대 건설업에서 많이 쓰이는 H형강의 경우 수입액이 31.3%나 줄었다. 중국·인도 등이 만드는 값싼 공산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제조 대기업이 국내에서 생산 설비를 줄인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수입 업체 대표는 “인건비 상승으로 해외에 나가는 제조 업체들이 늘어난 데다 중국이 여러 산업에서 품질을 대폭 끌어올렸다”며 “이러다 보니 한국에 중간재를 수입한 뒤 완성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 등 중국과의 경합도가 높아지는 업종의 경기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되 이들 산업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산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국과 경쟁도가 높아지는 업종을 보면 브랜드나 국적보다는 가격경쟁력이 부각되는 부문이 많다”며 “이런 산업들은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리쇼어링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고 있는데 자칫 하다가는 우리만 뒤떨어질 수 있다”며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생산 설비나 연구개발 지원을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세종=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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