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에 110억 달러(약 16조원)를 지원하고 미국 생산을 권장하자 대만 정부와 매체가 일제히 이를 견제하고 나섰다. TSMC의 첨단 제조 공정 중심은 여전히 대만이라는 것이다.
9일 연합보 등 대만매체들에 따르면 대만 경제부는 TSMC가 미국 내 첨단 제조 공장을 건설하더라도 TSMC의 대만 내 생산능력은 80~90%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만이 TSMC의 첨단 제조 공정의 핵심이 되게 한다는 방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TSMC가 대외 투자에 대한 계획안을 보내오면 투자 심사 메커니즘에 따라 관련 법률에 의해 심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상무부는 8일(현지시간) TSMC에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 66억 달러(약 8조9000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보조금 금액을 당초 예상치인 50억 달러보다 30% 증액했을 뿐 아니라 50억 달러(약 6조8000억원) 규모의 저리 대출도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TSMC도 이같은 지원에 호응해 미국 내 투자 규모를 650억 달러(약 88조 1000억원)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세 번째 반도체 생상 공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TSMC는 이미 400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생산 공장 두 곳을 짓고 있다.
연합보는 미국의 파격 지원을 반기면서도 견제의 목소리를 냈다. 연합보는 “전 세계를 향해 미국이 대만에 이어 TSMC의 두 번째 첨단 공정의 생산 중심지가 된다는 것을 선포한 것과 같다”며 “TSMC가 2030년까지 애리조나주에 2나노 공정이 활용될 세 번째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동안 대만에서는 최첨단 1.4 나노 또는 1나노 공정까지 가능한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 공장에 설치하는 첨단 공정은 대만보다 한세대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만 정부와 매체가 일제히 TSMC의 첨단 공정이 여전히 대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배경엔 TSMC가 탈대만화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 위한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년 사이 TSMC가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자 대만 내에서는 중국과의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외국 정부의 지원 때문에 TSMC가 탈대만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TSMC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만의 몇몇 대기업이 중국의 대만침공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에 제2의 본사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회계컨설팅그룹 KPMG 대만본부의 패밀리오피스 비즈니스 책임자인 라우니에이 쿠오는 "우리 고객 중에 제2본사 설립을 검토 중이거나 계획 중인 기업이 있다"면서 "대만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해외에서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후보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