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세계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먼 회장은 8일 주주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정치 양극화 등 지정학적 불안과 막대한 재정지출,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잠재적 위협 요인들을 언급했다. 그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인해 미국 기준금리가 수년 내 8%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면서 경제 연착륙 가능성에 대해 “시장이 예상하는 70∼80%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또 인공지능(AI)이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 발명처럼 산업 지형을 바꿀 것이라며 AI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글로벌 신냉전과 경제 블록화가 고착화하고 분쟁이 확산되는 지금은 다이먼 회장의 표현대로 ‘2차 대전 이래 가장 위험한 지정학적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이란·이스라엘 간 5차 중동전쟁 우려마저 제기된다. 북중러 대 한미일 대립 구도도 첨예해지고 있다. 게다가 세계 곳곳에서 극단의 대립 정치가 심화하고 포퓰리즘 남발로 인한 재정·부채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글로벌 부동산·주식 등 자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금융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끊이지 않는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세계 정치·경제 지형을 뒤흔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경제가 당장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듯하지만 자칫하면 초대형 경제·정치·안보 복합 위기로 빠져들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다이먼 회장의 경고를 마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글로벌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반도체 업황 호조로 수출이 개선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조되는 글로벌 불확실성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파고까지 겹쳐 한 치의 낙관도 허용할 수 없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외 변수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다층 위기 쓰나미를 막아낼 수 있도록 튼튼한 방파제를 쌓아야 한다. 이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경제를 주도할 신성장 동력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경쟁력을 갖추는 동시에 과감한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은 9일 ‘반도체 현안 점검 회의’를 열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을 ‘국가 총력전’으로 규정하고 “전시 상황에 맞먹는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춰 과감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략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과 규제 혁파, 구조 개혁 등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저성장 위기의 파고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