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석유화학 덮친 中 전방위 공세…정부, 덤핑조사 돌입

◆정부, 중국산 SM 덤핑조사 착수

中, 한국산에 관세 폭탄 퍼붓더니

공장 늘려 되레 저가공세 '역수출'

韓 4대 석화기업 수출 18% 줄고

일부 공장은 가동률 50%도 안돼

기업들 "생존 달렸다" 반덤핑 제소

석유화학 공장. 이미지투데이석유화학 공장. 이미지투데이




정부가 중국산 스티렌모노머(SM)에 대한 덤핑 조사에 돌입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까지 타격을 입자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1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전날(9일) 중국산 SM에 대한 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인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여천NCC가 지난달 중국산 SM이 과도하게 싸게 들어오고 있다며 제소한 데 따른 조치다. 무역위는 조사 대상에 오른 중국산 SM 수입·제조 업체 4곳에 덤핑 조사 질의서를 발송했다.

무역위는 중국산 SM 덤핑으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는지를 조사할 방침이다. 덤핑 조사는 통상 10~12개월이 소요된다. 무역위의 조사가 끝나면 세제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최종 보고서에 기반해 반덤핑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 무역위는 “필요시 현지 조사를 실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M은 합성수지(ABS), 합성고무(SBR) 제조에 쓰이는 필수 석화 원료다. 최근 중국 기업의 증설 러시로 가격이 폭락한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업계에서 반덤핑관세 부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SM 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에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SM 수출량은 2022년 55만 8000톤에서 지난해 29만 7000톤으로 사실상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SM 생산량도 210만 5000톤에서 160만 7000톤으로 23.7% 급감했다. LG화학은 지난해 충남 대산 SM 공장을 멈춘 데 이어 여수 SM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은 일부 해외 법인과 생산 기지를 정리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中 공습에 ‘직격탄’


“말 그대로 공멸할 수 있는 위기 상황입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와 같은 습격이 5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국내 석화 업계의 한 관계자가 9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중국산 스티렌모노머(SM) 덤핑 조사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의 덤핑 조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사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무역위의 이번 덤핑 조사는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여천NCC의 반덤핑 제소를 계기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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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은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완구 등에 쓰이는 기초 원료다. 세계적으로 품질 차이가 없는 단일 품목으로 과거 중국은 국내 석화 업체의 SM을 가장 많이 사들이는 최대 수입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2018년 관세 장벽을 끌어올리며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중국 상무부는 한국·대만·미국산 SM이 자국 산업에 손해를 유발한다며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토탈·SK지오센트릭 등 국내 SM 생산 업체들은 5년 동안 최소 6.2%에서 최대 7.5%에 달하는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한때 연간 120만 톤에 달했던 국내 기업의 대중(對中) SM 수출량이 현재 제로(0)가 된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중국은 한국산 SM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사이 무서운 속도로 공장을 증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중국의 SM 생산량은 2019년 약 900만 톤에서 현재 약 2000만 톤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중국이 한국에 SM을 역수출하기 시작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중국산 SM에 대한 관세율은 0%다. 한국의 SM 수입량이 2022년 47만 9000톤에서 지난해 77만 5000톤으로 최근 1년 새 62% 가까이 급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초반 몇 만 톤에 불과했던 중국의 SM 수출량은 최근 수십만 톤까지 늘었다”며 “가격에 반덤핑 관세 7%를 더하고 시작해야 하는 국내 제품은 중국산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불공정 무역에 중국발(發) 공급 과잉까지 겹치며 석화 업계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 수출은 456만 8200만 달러로 1년 전(543억 1600만)보다 15.9%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중 석유화학 수출이 207억 143만 달러에서 170억 5407만 달러로 17.6% 쪼그라든 결과다. 이에 LG화학·롯데케미칼 등 국내 4대 석화사의 수출도 최근 1년새 18% 가까이 줄었다.



가동률 50% 밑돌기도


공장 가동률도 하락세다. 당초 국내 에틸렌·합성수지 공장 가동률은 2020년만 해도 9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7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한화토탈·여천NCC·롯데케미칼 등의 일부 공장 가동률은 50%를 밑돈다. 통상 ‘가동률 70%’는 석화 업계의 손익 분기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구조조정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며 “중국의 불공정 거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업계가 먼저 덤핑 대응을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석화 업계는 사업구조 재편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 충남 대산 SM공장과 여수 SM공장 가동을 잇달아 중단하고 편광판 등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한 LG화학이 대표적이다. LG화학은 신사업 개발을 위해 지난해 연구개발(R&D)에만 1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기도 했다. LG화학의 연간 R&D 비용이 1조 원을 웃돈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롯데케미칼은 부가가치가 높은 ‘스페셜티’ 사업 비중을 높이기 위해 기초 석화 원료를 생산하는 자회사 LC타이탄 매각을 추진하는 등 구조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산업부는 최근 업계와 석화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산업부는 석화 제품 원가의 약 70%를 차지하는 나프타에 대한 관세 면제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 2월 울산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석유화학의 국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지원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밀어내기식 수출에 국내 석화 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주요 업체들이 중국산 덤핑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지 따져 그에 적합한 판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준형 기자·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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