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꽃잎이 흩날린다. 평범한 봄날의 모습이다. 봄이 한창인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불만이 분출한 ‘정권 심판론’이 야권의 압승을 이끌었다. 여소야대 구도가 이어지게 된 입법부와 대통령의 행정부 사이에는 봄날의 풍경과 대조적인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권 심판론은 투표 전 불거진 개별 후보의 자질 논란을 덮을 만큼 거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준혁 경기 수원정 당선인은 퇴계 이황, 고종 황제 등 우리 역사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망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같은 당의 양문석 경기 안산갑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 금지된 주택담보대출 대신 대학생 딸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아 서울 강남 아파트를 사들였다가 금융기관이 해당 대출을 회수하기로 했다.
정권 심판론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인 집권 여당을 향한 경고다. 2022년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3대(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내세웠지만 입법은 지난 2년간 21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막혔다. 의료 개혁은 의료계의 반발과 마주하고 있다. 야당과 의료계에 대한 집권 여당의 설득·소통 부족은 이번 선거에서 “민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참패로 이어졌다.
기득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16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로 알려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역시 공통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는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나타내는 신호다. 치솟은 집값 탓에 사회 초년생의 증여·상속 없는 내 집 마련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처럼 어려운 일이 됐다. 그렇게 부모의 능력에 따라 사회의 출발선이 달라지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는 ‘부모 찬스’라는 단어가 불공정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전체 인구의 20%가 부의 80%를 차지하는 부의 불평등을 의미하는 ‘20대80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자연현상에서 20대80 법칙의 단초를 찾았다. 부의 불평등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정치 권력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다.
세상이 아무리 각종 사건·사고로 뒤덮여도 봄날은 변함없이 매년 찾아온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끝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20대80 사회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권 세력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유권자들의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