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금융소비자로부터 은행이 욕먹는 이유[임채운 교수의 경제를 보는 눈]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은행 거래하면서 금융 소비자들이 느끼는 공통점은 은행이 매우 이기적으로 영업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며 이해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은행만큼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기업은 드물다.



은행이 대외적으로는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단건 단건 하나의 거래에서 이익을 올리려는 성향을 보인다. 말로는 고객을 우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고객의 욕구와 상황을 도외시한 채 손익만을 계산하는 은행의 행태에 많은 고객이 실망하고 좌절한다.

개인 소비자가 오래 은행 거래하다 가장 실감 나는 변화는 은퇴할 때 마통(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준다는 것이다. 웬만한 직장에서 경력이 쌓인 직장인이면 통상 1억원 정도의 마통 한도가 주어진다. 그런데 퇴직하면 1000~2000만원 수준으로 대폭 감소하는 것이다.

마통은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매우 요긴하다. 누구한테 빌려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할 때 쉽게 꺼내 쓰고 여유가 있으면 채워 놓는 지갑 역할을 한다.

은행은 마통을 미끼 상품으로 이용해 직장인을 고객으로 유치한다.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한도의 마통을 제공하며 자기 은행을 이용하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직장을 은퇴하는 시점에 마통을 걷어가는 것이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면 신용 대출인 마통의 리스크가 높아져 이를 회수하는 것이 은행 입장의 논리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통을 사용하며 성실히 이자를 납부한 기록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은행의 다른 상품을 이용하며 수익에 기여한 것도 반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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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은행에 연금펀드, 개인형IRP, 외화예금 등의 여러 상품 잔고가 상당 금액 남아 있지만 소용이 없다. 신용점수도 만점에 가까운데 마통을 연장해 주지 않는 은행의 야박한 처사가 야속할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마통을 갱신하러 지점에 갈 때마다 담당 은행원으로부터 새로운 상품을 권유받은 적이 많다. 수십 년에 걸쳐 은행과 거래하며 가입한 상품은 적금, 신용카드, 적립식 펀드, 변액보험, 퇴직연금 등등 다양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도 구매한 적도 있다. 당시에 은행원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작으면서 만기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역사적 통계를 고려할 때 기초자산인 홍콩H지수가 반 토막 날 정도로 하락할 일은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경제가 추락하며 홍콩 증시가 폭락해 대거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고객과 거래하면서 리스크를 최대한 회피하며 이자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 덕분에 은행의 이익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작년 이자수익은 총 41조3878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올렸다. 코로나19 여파와 고금리 추세로 가계, 소상공인, 중소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성과를 거두며 ‘이자장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은행이 단지 이익을 많이 낸다고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욕먹는 이유는 고객의 가치와 기여는 무시하고 은행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영업 관행 때문이다. 고객이 필요할 때는 도움 주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강요하는 은행의 이기적 행태가 고객을 처량하고 서글프게 만든다. 언젠가 은행 시장이 개방되어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면, 고객들을 무시하고 홀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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