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의 시민대표가 모인 가운데 13·14일 양일간 진행된 연금개혁 숙의토론회에서 소득대체율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소득안정론과 재정안정론이 대립하는 핵심 포인트가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이기 때문이다.
소득안정론에 속하는 학자들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가입자들이 충분한 노후 소득을 누리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하다면 보험료율을 더 올려서라도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입장이다. 이 의견이 담긴 안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함께 올리는 1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이다. 반면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소득대체율 인상이 오히려 기금 재정 악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연금개혁은 재정 지속 가능성 확보에 방점을 찍고 노인빈곤 문제는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다. 재정안정론은 보험료율만 12%로 올리는 2안에 담겼다.
“소득 보장 강화” vs “재정 안정 우선” 팽팽
소득대체율은 생애평균소득에 비해 노후에 수령하는 연금액의 비율이다. 2024년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은 42%로 매년 0.5%씩 줄어 2028년에는 40%로 고정되는 것으로 국민연금법에 명시돼있다. 다만 모두가 생애평균소득의 40%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가입기간이 20년 미만인 수급자는 20%에 해당하는 금액만 수령할 수 있다. 이후 가입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보장 비율은 1%포인트씩 높아진다. 총 40년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40%의 소득대체율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소득대체율에 따라 국민연금 지출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연금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소득대체율은 항상 화두에 올랐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10년이 지나 1998년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는 1차 제도개혁이 있었다. 이후 2007년에는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대폭 낮추고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17년이 흘러 2024년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시민 참여형 공론화 과정에 부친 안건에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안건이 개혁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선진국 수준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서는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재정 부담 때문에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나빠진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안이 채택될 경우 2093년 기준 누적 적자 규모는 현재보다 702조 8000억 원 악화된다. 이렇다보니 숙의토론회에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와 여파를 두고 소득안정론과 재정안정론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연금 개혁 논의에 시민참여형 공론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소득대체율 부진” vs “통계 착오탓”
소득안정론자들은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50.7%)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31.2%라는 점을 부각한다. 선진국 수준의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재정안정론자들은 여기에 통계의 오류가 숨겨져 있다고 반박한다.
OECD는 통계자료를 만들 때 나라마다 다른 연금제도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상시근로자 소득 대비 연금지급액’과 ‘22세부터 가입 종료 연령까지 기간’을 곱해 비교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입 상한 연령이 59세여서 가입기간이 38년으로 계산된다”며 “반면 대부분 선진국들의 가입 기간은 44년 내외”라고 설명했다. OECD 기준 소득대체율이 부진한 것은 법정 소득대체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가입기간이 짧아서라는 설명이다. 이에 재정안정론 측은 국민연금의 가입상한 연령(59세)와 수급개시연령(1969년생 이후 65세) 모두 상향해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 확대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도형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인들의 평균 실질 은퇴 연령은 70대 초반까지 올라갔다”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60대에 연금을 더 납부하고 후기고령 연령을 앞둔 시점에 연금을 수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인빈곤해결?…“연금보다 복지로”
소득안정론 측 학자들은 숙의토론회 내내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것이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대로라면 청년 세대가 은퇴했을 때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일 것”이라며 “부양의 책임을 자식들에게 지게 하지 말고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누자”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노인 세대와 미래 세대의 소득양극화 양상은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속성장기 저임금 구조 속에서 노후 자식의 부양을 기대한 세대와 선진국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자산을 축적하는 세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석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이미 다층적 연금을 형성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것은 물론 퇴직금의 혜택도 받고 개인연금 저축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지금의 노인빈곤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수급자인 어르신들 상당수가 가입기간이 짧고 기준월소득액이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빈곤선 이하의 노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더 받으면 좋지만…‘역진성’ 문제도
일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식이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역행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석 교수는 “소득대체율이 올라가면 모든 수급자들의 지급액이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며 “가입 기간이 길고 지급기준액이 높은 수급자들의 연금 증가액이 빈곤에 처한 수급자들보다 더 많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소위 말하는 월 200만원 이상의 고액 수급자들이 무더기로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석 교수는 “1안과 2안의 고갈 시점은 1년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이후 발생하는 적자 폭은 크게 벌어진다”며 “때문에 2093년 기준으로 1안과 2안의 누적적자 차이가 2600조 원 이상 차이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