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여성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전만 해도 글로벌IB는 여성의 불모지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문성에 부드러운 리더십을 더해 ‘유리천장’을 뚫고 굵직한 거래의 주역으로 떠오른 여성 리더의 수가 부쩍 많아지는 추세다.
15일 IB업계에 따르면 최근 JP모건증권 서울지점장에 하진수 수석본부장이 선임되는 등 파트너 이상의 여성 임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딜의 여왕’으로 불리는 하 지점장은 도이치증권에서 시작해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에서 IB경력을 쌓았다. 지난 2019년 JP모건에 합류한 뒤 하이브,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등 조 단위의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수임하며 주식발행시장(ECM)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하 지점장은 지난 2022년 전무로 초고속 승진한 데 이어 2년 만에 JP모건 서울지점 설립 후 첫 여성 지점장에 올랐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한 투자회사인 EQT파트너스에는 연다예 EQT 프라이빗 캐피탈 한국 대표가 한국 PE 투자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연 대표는 모건스탠리 투자은행 뱅커 출신으로 2010년부터 홍콩계인 베어링PEA에서 근무했고, 지난 2022년 EQT파트너스와 베어링PEA가 통합한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 대표는 로젠택배, 한라시멘트의 인수 및 매각, 애큐온캐피탈 인수 등의 인수합병(M&A) 거래를 주도했다. 투자를 담당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며, 동종업계 최연소 등기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UCK파트너스(구 유니슨캐피탈)에는 신선화 파트너가 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신 파트너는 자문보다는 회사 인수부터 매각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겠다는 생각에 지난 2014년 중견기업 바이아웃(경영권 포함 인수) 전문 사모펀드(PEF)인 유니슨캐피탈로 옮겼고 원금 대비 약 6배 수익률로 프랜차이즈 밀크티 ‘공차’ 신화를 썼다.
공차 투자 사례는 지난 2020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발간한 케이스 스터디 교재에 실려 강의에 활용되기도 했다.
신 파트너는 또 구강 스캐너 기업 메디트(원금 대비 약 6배 수익률), 식품 업체 구르메 F&B(원금대비 2배 넘는 수익률) 등을 통해 내부수익률(IRR) 150% 이상 성과를 거뒀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에프앤디넷, 학산(테라로사), 설빙 투자 주역이다.
이 외에도 지난해 한샘 대표로 취임한 김유진 IMM프라이빗에쿼티(PE) 부사장은 보스턴컨설팅(BCG)그룹 출신으로 IMM PE의 첫 여성 파트너이다. 지난 2022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합류해 첫 파트너급 여성 매니저에 오른 홍희주 전무는 골드만삭스와 유니슨캐피탈을 거쳤다.
MBK파트너스의 첫 여성 파트너인 이인경 부사장은 안진회계법인과 모건스탠리계열의 부동산 투자회사인 MSPK에서 활동했고, 아주캐피탈·두산엔진 등의 거래 전반을 총괄한 이남령 웰투시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올초 승진했다.
이처럼 여성 IB 인력의 활약이 늘어나면서 IB업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PE 고위급 여성 네트워크 포럼인 PEWIN(Private Equity Women Investor Network) 서울지부에는 현재 13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오는 6월 투자 경험담을 공유하는 컨퍼런스도 열 예정이다. IB업계에 입문한 젊은 여성에 멘토링을 해주겠다는 취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IB출신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점점 PE 하우스에서도 분석 능력이 뛰어난 여성 인력을 직접 뽑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