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한 장면들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다. 굳이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때의 감동을 언급하는 것은 땅속 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이제는 전기 배터리 원료 소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이끌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전기차 배터리다. 대부분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배터리 생산국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원료 소재, 즉 알맹이는 전부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전방 산업인 제품화 기술에만 특화돼 있기에 중국이 쳐 놓은 원료 소재 공급망 구조에 옭아매어져 있다.
진정한 K배터리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광물을 생산하는 후방 산업과 핵심 광물의 제련 및 소재화의 중간 산업에 전략적으로 파고들어 우리의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중국은 이 중간 산업을 장악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을 일상화하고 있으며 경제·정치적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제2의 요소수 사태와 희토류 수출 금지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해법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공급망의 빈틈인 제련 및 소재화 기술의 중간 산업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핵심 광물의 주요 생산국인 호주·칠레·콩고 등은 개발된 광물 전량을 중국에 보내고 있다. 이는 후방 산업 국가 대부분이 독자적인 중간 산업의 핵심 기술이 없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중국의 낮은 환경 규제에 따라 원료 소재 생산 공장이 중국에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찾을 수 있다. 즉 자원 부국들에 선광 및 제련 기술을 전수해 중국이 독식하고 있는 중간 산업인 제련·소재화 분야를 담당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키는 전략이다.
지질자원연구원은 자원 부국들이 필요로 하는 제련·소재화 기술을 최근 2년간 집중적으로 연구해 중국을 넘어선 광물자원 전 주기 기술의 초격차를 실현했다. 지난 30년간 꾸준히 연구한 결과물이다. 특히 올 3월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주요 자원 부국 8개국과 함께 지질자원연의 우수한 광물자원 전 주기 기술을 제공하는 ‘핵심기술공유협의체’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그동안 중국이 자원 부국을 공급자 형태로만 활용했다면 우리는 이 협의체를 통해 해당 국가에 제련·소재화 기술을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들이 생산한 원료 소재 생산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제는 단순한 수요·공급 관계를 넘어 그들의 기술 자립을 적극 지원하고 우리와의 기술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 중심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월드컵 4강이 우리나라를 축구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듯이 이제는 ‘핵심기술공유협의체’를 통해 우리도 핵심 광물 원료 소재 생산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펼쳐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 꿈을 여물고(공급망 다변화) 실현하게(핵심 광물 생산) 하는 기술 패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