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양안전쟁과 애치슨라인 부활의 공포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빅테크, "수년내 중국 대만 침공할 것"

美 리쇼어링·IRA 등 지정학 리스크 대비

TSMC, 日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 건설

한국과 대만 제외한 '애치슨 라인' 떠올라

최악의 시나리오 상정한 대응책 마련해야


분단국가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양안(중국·대만) 전쟁 가능성에 가장 둔감한 국가는 대한민국일지도 모른다. 미국 빅테크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수년 내 일어날 기정사실로 본다. 시기의 문제일 뿐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빅테크 최고경영자(CEO) 중 양안 전쟁 가능성을 부정하는 인물은 대만 출생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뿐이다. 하지만 “둠스데이(최후의 날) 시나리오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도 자신감은 없었다. 대만 출신의 간절한 바람일 뿐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반도체 생산처를 미국으로 되돌리겠다는 리쇼어링, 2차전지의 미국 내 생산을 독려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더 나아가 갈수록 높아지는 철강 관세 장벽까지. 미국의 대외 산업 전략 기저에는 대만이, 나아가 동아시아가 공급망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양안 전쟁 발발 시 반도체·2차전지·철강 같은 ‘산업의 쌀’을 동아시아에서 수입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은 가장 노골적인 사례다. 대만 내 TSMC가 사라져도 미국 내에서 초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챔피언’으로 꼽힌 기업이 인텔이다. 반도체법이 사실상 인텔의 로비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거리낌 없이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하다”고 언급하고, 반도체 업계의 그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텔은 1000억 달러를 투입해 파운드리 역량을 수복 중이다. 미 정부는 200억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법 지원금으로 화답했다.



물론 미 정부의 압박에 TSMC는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공장을 건설했거나 지을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TSMC의 일본 진출이다. TSMC의 탈(脫)대만 전략은 미국 압박으로 시작된 것이다. TSMC는 미국과 함께 일본을 새로운 생산 기지로 선택했다. 양안 전쟁 시 일본이 위험지대라고 판단했다면 미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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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안전지대’라면 한국은 어떨까. 양안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의 국지 도발 가능성은 99%다. 외려 국지 도발 수준에서 끝나기를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주요 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이천·평택·기흥·화성은 미국 관점에서는 휴전선 ‘코앞’이나 다름없다. 평택은 미군의 해외 최대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양안 전쟁 개전 시 남한이 전쟁의 여파를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산업적 가치는 어떨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여전히 ‘메모리’에 치중돼 있다. 미국에는 메모리 3강 중 하나이자 곧 60억 달러 상당의 반도체법 지원금을 받아낼 마이크론이 있다. 파운드리와 달리 한국의 메모리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미국은 ‘대안’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행보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들이 바라보는 양안 전쟁 ‘안전선’은 일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남한과 대만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애치슨 라인이 가져온 결과가 6·25전쟁과 분단이었다는 사실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안타깝게도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입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래’들이 한국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정책을 내놓도록 노력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미 ‘스킨십’은 잘 작동하고 있을까. 무형의 스킨십은 알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합법적 로비 규모를 알아보자. 미 로비 자금을 추적하는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타국 로비 자금 지출 순위에서 한국은 2696만 달러로 9위에 그쳤다. 중국의 7989만 달러, 일본의 5798만 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고 아랍에미리트(UAE)의 3923만 달러보다도 적다. 일본은 한국의 KOTRA 격인 JETRO 차원에서 4309만 달러에 달하는 로비를 펼쳤다. 우리 정부 기관은 10위 권 내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양안 전쟁 발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시기 또한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양안 전쟁 발발 시 당사국인 중국과 대만을 제외하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깊이도, 폭도 알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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