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한강의 기적 끝났나" 외신도 저성장 '경고'

[FT '韓 경제성장률 둔화' 지적]

값싼 에너지·노동력 더 확보 안돼

과거 성장모델 제조업 집중도 문제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서울경제DB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부지. 서울경제DB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이끈 ‘한강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성공 방식에 얽매여 낡은 경제성장 모델을 답습하면서 성장 동력이 서서히 꺼져 가고 있다는 뼈아픈 진단이다.



21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경제의 기적이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통해 1970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6.4% 성장했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차츰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간한 ‘한국 경제 80년 및 미래 성장 전략’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970년대에는 연평균 8.7%, 1980년대에는 9.5%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2020년대에는 2.1%, 2030년대 0.6%로 크게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40년대에는 -0.1%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초저성장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한국 경제를 받쳐왔던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이라는 기존 성장 모델의 기둥이 흔들리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았다. 한국 정부는 그간 국영 에너지 독점 기업인 한국전력에 1500억 달러(약 200조 원)의 부채를 떠넘기며 에너지 가격을 낮춰왔다. 또 노동 생산성 측면에서도 다른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5번째로 낮은 문제가 있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 위기가 심화하면서 2050년 생산가능인구가 2022년 대비 35% 가까이 감소해 국내총생산(GDP)이 28%가량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 속에서도 한국 정부는 제조업과 대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과거의 성장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FT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원천 기술 부족과 중국과의 격차 축소 등을 언급하며 “모방을 통해 선진 경제를 따라잡는 식의 경제 구조가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재벌들의 경영이 대를 이어 계속되며 성장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성격이 강해졌고 재벌 주도의 경제로 인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투자 여력이 부족하고 불평등이 심해졌다고 밝혔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한국 산업은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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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500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500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으로는 제조업을 통한 기존 성장 모델이 ‘너무 성공적’이었기에 개혁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제조업 집중 투자 모델을 통해 반세기 만에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송승헌 맥킨지앤드컴퍼니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은 경공업 중심에서 1960~1980년대 석유화학 및 중공업으로, 1980~2000년대 첨단 제조업으로 전환하는 두 번의 큰 도약을 이룬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모델은 최근 효력을 다한 양상이다. 2005년부터 2022년 사이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에 새로 진입한 분야는 디스플레이 단 하나에 그친다. 또 2012년 한국 정부가 선정한 120개 중점 기술 중 36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던 한국은 2020년 단 4개 분야에서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인공지능(AI) 붐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2019년 발표된 용인 메가 클러스터 개발을 소개하며 “한국이 훨씬 가난하고 덜 민주적이었던 시기에 처음 개발된 경제 모델을 지속하기 위한 한국의 도전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27년 첫 번째 클러스터가 완공된다고 해도 실력 있는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저렴한 에너지 공급이 가능할지도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국이 기존 강점인 반도체에 집중하는 것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의 저자인 정인성 씨는 FT에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의 최첨단을 유지함으로써 향후 AI 분야의 혁신에서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미국과 중국의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DNA에 역동성이 내재해 있다면서 “경제적 역동성을 다시 펼치기 위해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지만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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