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속에서도 가상자산·주식 등 투자 열풍이 이어지면서 이를 미끼로 한 사이버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으로 대표되던 금융사기 수법이 ‘투자리딩방’ 등 사이버 환경으로 옮겨가면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투자리딩방 사기를 포함한 사이버 사기 범죄가 2021년 14만 1154건에서 지난해 16만 7688건으로 2년 새 19% 증가했다. 전체 사이버 범죄에서 사기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83%에서 86%로 덩달아 늘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감소세를 보이고 있던 ‘피싱 범죄’와 사이버 사기 범죄가 결합된 형태의 신종 수법도 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서울경찰청은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리딩방 운영자 A 씨로부터 리딩방 유료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제공받고 이들을 대상으로 54억여 원을 갈취한 조직원 37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코인 발행사 직원으로 가장, 리딩방에서 피해를 본 유료 회원들에게 접근해 “상장이 확정된 코인으로 피해를 보상하겠다” “코인을 추가로 매수하면 고수익을 얻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속여 투자금을 송금받은 후 잠적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금융 당국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식지 않는 투자 열풍에 피해 사례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경찰은 사이버 사기 범죄 피의자 2만 3682명을 검거했다. 이 중 직거래(중고거래 등) 사기 피의자가 40%로 가장 높았으며 투자를 빙자해 가상자산 등을 이용한 사기 행각을 벌인 피의자들이 38%로 그 뒤를 이었다.
2022년 3월부터 10월까지 경찰이 사이버 사기 집중 단속을 벌였을 당시 직거래 사기 피의자가 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투자 빙자 가상자산 이용 사기가 3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1년 만에 투자 빙자 가상자산 이용 사기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가격이 폭등하거나 공모주가 ‘따따상’을 기록해 한 번의 투자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한탕주의’ 세태도 사이버 사기 범죄의 증가를 부른 원인으로 꼽힌다.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실제 코인 투자를 통해 거액을 벌어들인 주변의 사례들을 보고 투자에 나섰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피해 사례가 마치 다단계와 같은 집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둔갑하는 경우도 발생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단순히 리딩방 등을 운영하며 리딩비를 요구해 이를 편취하는 방식이 유행했다면 이후에는 정교한 가짜 투자 애플리케이션까지 제작되며 피해 규모를 키우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소규모 범죄 조직들이 모여 피해자 유인, 자금세탁, 대포통장 유통, 사이트 제작 등 조직별 전문 분야을 분담하는 ‘점조직’ 형태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 점조직 형태는 범행에 가담한 일부 소규모 조직이 적발되더라도 ‘꼬리 자르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수사기관도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금융회사 등 적법한 경로가 아닌 리딩방과 같은 비공식적인 방식의 투자 또는 자문에 기댈 경우 수익은커녕 범죄 조직의 범행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