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봄날

작가

봄의 발걸음 더딜수록 간절함 커져

모든 억압 맞서 더 나은 세상 열도록

자유 향한 작은 실천 멈추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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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유난히도 더디게 찾아오는 올해였다. ‘벚꽃 없는 벚꽃 축제’라며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느리디느린 봄꽃 소식이 오히려 기다림의 설렘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오늘은 피었으려나, 내일은 꽃봉오리가 솟아오르려나. 희미하게 솟아오르는 꽃봉오리 하나하나의 기미가 더욱 애틋해진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국내외 정치 상황은 불안하고, 일자리는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 이 땅의 젊은이들은 마음껏 사랑하고, 일하고, 타오를 기회도 없었던 자신의 숨은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 봄을 아쉬워하다가 바로 이 문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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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꽃을 잘라버릴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문장이다. 나는 비로소 이 감질나는 봄꽃의 기다림이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성장하게 함을 깨달았다. 세상 모든 꽃을 잘라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폭력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꽃을 기다리는 수많은 존재들의 희망을 말살하는 것이다. 꽃을 사랑하는 인류뿐만 아니라 꽃이 있어야만 봄을 맞이하고 꿀을 모을 수 있는 꿀벌들, 꽃이 피어야만 시작되는 지구의 봄 자체를 멈추는 가공할 폭정이다. 네루다는 아마도 우리처럼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봄’을 고대하며, 갑갑하고 힘겨운 겨울을 견뎌냈을 것이다. 우리가 네루다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단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문학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가 곧 칠레 민중의 자유가 되기를 꿈꾸며 끊임없이 투쟁하고 저항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꽃을 잘라버릴지도 모르는 권력과 독재의 힘에 맞서, 우리는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봄이 오는 소리가 되도록,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하루하루를 더 아름답게 꽃피우는 작은 실천들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비로소 꽃들의 느린 발걸음이 더욱 커다란 영감을 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꽃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매 순간을 축복처럼 느끼라는 것. 바로 그런 자연의 발칙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그저 정해진 날짜대로, 아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날짜에 봄이 왔다면, 우리는 봄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청년들이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는 희망의 봄, 꿀벌들이 급조된 설탕물이 아닌 진짜 꽃의 꿀을 만끽할 수 있는 자연의 봄, 사랑에 빠진 모든 인류가 자신의 사랑을 저주하거나 징벌하지 않고 사랑 자체에 깃든 축복을 남김없이 들이마실 수 있는 영혼의 봄. 나는 그런 봄을 기다린다.

가짜 민주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이 만발하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오고 있는 중임을 당신이 잊지 말았으면. 권력에 맞서, 당신의 눈부신 꽃을 꺾어버리려는 그 모든 억압에 맞서, 꽃보다 더 아름다운 당신의 영혼이 비로소 ‘나만의 눈부신 언어’를 찾아 수줍은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올릴 그날을 꿈꾸며. 세상 모든 꽃을 꺾을 수 있을지라도, 이미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오고 있는 그 봄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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