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중대법100일]“우리도 처벌 대상?”…식당 사장도 스타트업 대표도 여전히 혼란

생계·사업 바쁜 소규모 사업장

올 초 법 적용에도 여전히 인식 미흡

사고 거리감에 교육 필요성 못느껴

규제 비용 증가도 부담 키워

관련 기관도 현실 고려해 대책 회의적

정부 지원책도 대상 한정적

전문가 “맞춤형 자문 지원책 확대를”

한 국가산업단지 전경 / 연합뉴스한 국가산업단지 전경 / 연합뉴스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지 몰랐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과 같은 각종 법정의무교육을 듣고 있는데 솔직히 중대재해법 대비 교육까지 들을 여유는 없습니다. 당장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게 다수의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직원 17명의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A사 대표)



“자영업자들은 생업에 바빠 중대재해법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자영업자가 관련 서류나 안내를 받아볼 겨를이 없는데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법 시행이 강행됐습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프집 사장님)

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지 100일 가까이 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대다수가 교육을 이수할 여유가 없는 데다 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해서다. 소비 위축 등 경기불황에 직면한 가운데 규제 비용이 늘어난 데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교육이 실시되었는지 점검·개선하도록 사업장 대표에 의무를 부여한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는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산업안전보건교육 이수가 필수적이다. 사무직 근로자도 매년 12시간씩 교육을 받아야 하고 사업주 같은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는 6시간의 교육을 추가로 더 들어야 한다.




스타트업 업계는 중대재해법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정보기술(IT) 업종 위주여서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심부름 대행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B사 대표는 “건설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로 처벌받는 사례를 주로 접하다 보니 사업적으로 관련이 없는 스타트업까지 중대재해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개발자 인력 비중이 높은 스타트업 업계에선 중대재해법 위반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보는 창업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직원 규모가 적은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정식 고용 대신 프리랜서에 외주를 맡기는 경우도 많아 직장 내 교육 환경을 갖추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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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한파가 불어닥친 가운데 새로운 비용이 늘어난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자율주행차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C사 대표는 “차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을 대비해 가입 보험의 보장 내역을 강화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면서 “안전 문제로 인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사업 확장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달 전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받았는데 모빌리티와 같은 신(新) 산업 분야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소상공인들의 상황도 매한가지다. 경기도 광명에서 2~3개의 요식업 브랜드 직영점을 관리하는 D씨는 “프랜차이즈 사업체의 경우 기업에서 안내를 하기 때문에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일반 소상공인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소상공인의 나이가 많을수록 이 부분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외식업체 폐업률이 코로나19 시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4월 28일 서울 시내 한 상가 공실의 모습. / 연합뉴스지난해 외식업체 폐업률이 코로나19 시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4월 28일 서울 시내 한 상가 공실의 모습. / 연합뉴스


소상공인·스타트업 관련 기관은 수요가 미미하다는 판단 아래 중대재해법 교육이나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다. 국내 유일 소상공인 법정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중대재해법 대비에 대한 문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민간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또한 아직까지는 중대재해법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지원책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클린제조환경조성 사업’을 통해 중대재해법 대응을 돕고 있지만 소상인이 아닌 기계·금속 가공, 신발·의류 제작 등 상시 근로자 10명 미만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제한된다. 이마저도 1700개 사 내외로 한정돼 있어 55만 개에 달하는 소공인 사업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이 사업은 일반적인 안전 환경 조성, 에너지 효율 개선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어 중대재해법 전용 지원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다만 법 확대 시행에 따라 다른 분야에 비해 중대재해 지원 한도는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을 겨냥한 맞춤형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지는 중대재해법 설명회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면서 “영세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업종에 특화된 맞춤형 자문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혁 기자·박정현 기자·이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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