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밸류업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관심이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반응이 있어 다행입니다.”
2일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 만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 밸류업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이날 발표된 밸류업을 두고도 “세제 혜택이 없고 기업 자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며 “실망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욕하면서도 밸류업에 매번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세부 내용에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밸류업 방향은 모두가 공감한다. 국내 증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일본 증시 호황 등도 참고했겠지만 정책의 기저에는 부동산에 쏠린 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명분이 깔려 있다.
팬데믹 이후 과도한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 왔다. 한국은행도 2021년 8월 주요국 중 가장 먼저 금리를 올렸다. 그랬던 정부와 한은은 2022년 말 집값이 급락하자 다급히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고 금리 인상을 멈췄다. ‘상환 범위 안에서 빌린다’는 원칙을 깬 특례보금자리론을 내놓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눈감아줬다. 가계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만큼 집값 하락도 방치하기 힘든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부동산 등 실물자산은 유동화가 어렵고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도 크다. 위기 때마다 대출 문턱을 낮춰 집값을 띄우는 정책도 인구 감소 등으로 이미 한계에 와 있다. 당국에서도 언제까지 대출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것이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부동산 불패를 깨고 금융자산이 50% 이상인 선진국형 구조로 전환하려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는 밸류업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금융 당국은 공언한 대로 밸류업을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한다. 세제 인센티브나 페널티 등 시장이 요구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자세도 필요하다. 밸류업이 실패해 ‘코스피 2700은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적정 평가’ ‘국장은 절대 안 한다’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면 한국은 부동산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