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의정갈등 해소,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

다음 주면 전공의 집단이탈 3개월째

의료공백 장기화에 여론도 기류변화

응급수술처럼 대화도 골든타임 있어

전공의·의협 등 만나 돌파구 찾아야

김정곤 바이오부장김정곤 바이오부장




“의료계라는 곳이 원래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데예요. 서로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릅니다. 의료계 내부에서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게다가 MZ세대가 주축인 전공의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손해도 감수하려고 하죠. 우리 기성세대처럼 사명감이나 희생정신을 강요하며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하는 의정(醫政) 갈등을 해결할 묘안을 묻자 의료계의 한 원로가 내놓은 답변이다. 그의 얘기를 듣자마자 왜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지, 왜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지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의정 갈등의 해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다음 주가 되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지 3개월이 된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시작된 의료 공백 사태는 국민들의 불편과 의료진의 탈진, 대형 병원들의 경영난을 넘어 이제는 약국·제약 업계 등 후방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이 지속되며 해결될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의대 정원 증원의 과학적인 근거를 대라며 원론적인 주장만 반복하는 동안 국민들의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 이제는 의대 정원 증원을 논의한 회의록의 존재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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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출발은 좋았다. 응급실 뺑뺑이로 상징되는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더 이상 증원을 미룰 수 없다는 명분이 충분했다.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했다. 정부가 의정 갈등 초기 의료 공백 우려에도 행정명령 등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자신감의 근거다. 그러나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며 의료 현장의 피로도가 쌓이고 여당이 4·10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여론도 기존 기류와는 다르게 바뀌고 있다. 정부가 ‘유연한 대응’을 강조하며 2000명 증원 원칙을 내려놓고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의 50~100%선에서 대학 자율로 모집하도록 허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가 한발 물러섰지만 의료 현장을 이탈한 대다수 전공의들은 꿈쩍도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달 새로 출범한 의협 신임 집행부는 연일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도 의료계에 ‘집단행동을 멈추고 돌아와 대화하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양측의 간극은 절대로 좁혀질 수 없다.

의정 갈등을 해소하려면 우선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 의정이 대화로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일 이달 중순 서울고등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면 의대 정원 증원 절차는 올스톱되고 대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의 입장만 강조하며 사태가 더 꼬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정부도, 의료계도 선택해야 할 때다. 응급수술에만 골든타임이 있는 게 아니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대화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감정만 쌓이고 대화를 통한 타협은 더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4·10 총선’ 직전 전공의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총선용이다, 아니다’ 갑론을박도 많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복귀를 설득하는 만남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윤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정부의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과 의료 개혁에 대한 의지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의료계와 만나 대화하겠다는 메시지도 나오면 좋겠다. 대통령이 전공의 대표부터 다시 만나고 의협 집행부와 의대 교수들도 만나라.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이제는 의정 갈등을 끝내야 할 때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라. 대통령이 의료계를 직접 만나면 끝이 보이지 않던 의정 갈등의 돌파구도 마련될 것이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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