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 시기였던 2000년 6월 2일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법 20조의2’ 조문을 개정해 국회의장 당적 보유를 금지하도록 명시한 법안이다.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인한 국회 파행을 방지하려는 취지였다. 이 법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장 대안’으로 다듬어져 2002년 2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그 직에 있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는 규정이다. 대의민주주의 선진국인 영국도 국왕과 의회의 갈등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하원의장 탈당을 의무화했는데 우리도 유사한 제도를 갖추게 됐다.
국회의장 당적 제한은 5대 국회 시절에도 도입된 적이 있다. 당시 양원제였던 국회에서 의장 및 부의장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개정안이 1960년 8월 발의됐다. 여야는 우선 의장에 대해서만 당적 이탈을 의무화하기로 가닥을 잡아 그해 9월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5대 국회는 이듬해 5월 역사의 굴곡 속에 해산됐고 1961년 11월 개정된 국회법에서 의장 당적 금지 조항이 삭제됐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사라졌던 의장 당적 보유 금지 제도가 41년 만에 복원된 것은 우리 정치가 이룬 소중한 성취다. 16대 국회 당시 이만섭 의장은 취임사를 통해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국회법 개정 후 탈당해 공정하게 의장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의 취지가 최근 위협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나선 추미애·정성호·조정식 의원 등이 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김진표 국회의장은 “조금 더 공부하고 우리 의회 역사를 보면 그런 소리를 한 사람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장 도전자들은 ‘동물·식물 국회’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국 의회의 역사를 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