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넘지 말아야 할 선

김민형 금융부장





기업 오너가 목표를 제시하면 구성원들은 그 방향으로 힘을 모은다. 목표나 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면 충성심 없고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승진 인사나 연봉 협상에서 족쇄가 돼 회사 생활 내내 따라 다닌다. 오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슬기로운 직장 생활’의 0순위 처신인 셈이다.



금융회사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무조건적인 맹종보다 독립성과 상호 견제를 중시한다. 은행의 경우 행장과 부행장의 의견이 다를 때가 생각보다 많다.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행장은 수신·여신·투자·마케팅 등 각각의 고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다. 최고경영자(CEO)인 행장도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독단적인 의사 결정을 막기 위해 대출·투자 등을 결정할 때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장치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가 상대적으로 철저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오너 체계가 아니라 대부분 여러 주주들이 지분을 나눠 갖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CEO 역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임기 후 무대에서 퇴장한다. 더 길고 강한 권력을 탐했던 금융사 CEO들은 하나같이 ‘불명예 제대’를 면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윗사람 눈치를 안 보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은 배경이다.

돈을 다루는 업무의 특수성도 반영돼 있다. 은행이 대출할 때 명확한 기준에 따르지 않고 특정 인사나 외압 또는 인맥에 좌지우지되면 그 은행의 건전성은 유지되기 힘들다. 건전성을 잃은 은행은 생존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대출을 비롯한 각종 업무들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서로가 선을 넘지 못하도록 견제·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 과거 이 선을 넘었던 금융인들은 범죄자로 전락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최근 금융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 갈등이다. 강호동 중앙회장이 새로 당선되면서 불거졌다. 금융지주는 NH투자증권(005940) 새 대표로 윤병운 현 대표를 추천했지만 중앙회는 유찬형 전 중앙회 부회장을 밀었다. 윤 신임 대표가 최종 선임되면서 충돌은 일단락됐지만 중앙회와 금융지주의 해묵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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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농협의 지배구조를 점검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20일부터 시작하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 검사에서 금융지주의 독립성 확보 방안을 들여다 볼 계획이다. 금감원은 최근 발생한 농협은행 직원의 100억 원대 배임, 2억 원대 횡령 등 잇단 금융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내부통제 문제라고 보고 있다.

중앙회는 2012년 농협 신경 분리(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의 분리) 이후 금융지주를 중앙회 산하 조직에서 독립시켰다. 금융 계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전문성이 부족한 중앙회 출신 인사들이 종종 금융지주 계열사에 내려 꽂혔다. 또 중앙회 출신 직원이 시군 지부장으로서 관할 은행 지점의 내부통제를 총괄하는 점도 이례적이다. 과거 농협금융지주에 몸 담았던 한 인사는 기자에게 “금융지주가 의사 결정을 할 때 중앙회의 간섭을 막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금융지주 인사나 경영에 중앙회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가 됐다"고 전했다.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농업인들의 투표를 통해 당선되는 ‘900만 농심의 대표자’다. 농업에 대한 전문성과 회장의 권한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는 아니다. 금융 사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중앙회장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금융은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산업이지만 하루 뒤도 예측하기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사 결정 구조의 초점도 잘못된 판단을 최소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 보장이다.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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