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갈등이 최고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이면 합의 주장에 이어 녹음파일까지 공개하겠다며 압박하자 필리핀은 대사관 관계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맞서며 영유권 분쟁이 점차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에두아르도 아노 필리핀 국가안전보좌관은 이날 서명을 통해 "중국 외교관과 필리핀 군 관계자 사이에 전화통화 녹음이 허가 없이 공개돼서는 안 된다"며 (중국대사관)관련자 전원을 즉각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아노 보좌관은 "국제 관계와 외교의 기본 규범에 대한 심각한 위반 행위"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통화녹음 파일은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영유권 논쟁 과정에서 불거졌다. 마닐라 주재 주필리핀 중국대사관은 지난 4일 필리핀군 서부사령부와 중국 당국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와 관련해 올해 초 새로운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대사관 측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세컨드 토마스 암초 운영에 대한 새로운 모델에 합의했다"며 "국방부 장관 등 필리핀 군 핵심 관리의 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는 사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대변인은 전 정권이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구두로 합의했다고 폭로하면서 문제가 확산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이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필리핀이 필수 물자만 보내고 시설 보수나 건설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리핀은 허위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교활한 음모"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지난해 7월 이후 군에 중국대사관 측과의 접촉을 불허했다고 전했다. 에두아르도 아노 필리핀 국가안보자문관 역시 성명을 통해 "터무니없다"며 "국익을 훼손하는 어떠한 제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현직 장성의 녹음파일을 공개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녹음파일 두고 “이면 합의” VS “조작” 공방
앞서 중국 당국자들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에 대한 합의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필리핀 군 관계자와의 1월 3일 전화통화 녹음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이 주장하는 통화녹음 파일에는 양국이 세컨트 토마스 암초 운영과 관련해 새로운 모델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시진핑 수석이 세컨트 토마스 암초에 필리핀이 필수 물자만 보내고 시설 보수나 건설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필리핀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전 정권과 중국의 이면 거래에 대해 아는 바 없으며 국익에 반하는 합의가 있었다면 무효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 측 주장대로 중국과 두테르테 정권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합의했다면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필리핀군 당국은 지난 8일 성명을 발표해 필리핀군 서부 사령관인 알베르토 카를로스 중장과의 전화통화 녹음파일 공개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의 악의적인 영향력 행사"로 규정하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물대포 공격에 합동 군사훈련까지…군사적 충돌 우려도
양국 간 분쟁이 벌어지는 지역은 베트남, 대만, 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의 영유권과도 연결돼 있다. 특히, 대만 남부와 필리핀 북부 사이 바시해역은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은 이 지역에 항구를 건설하는 방안을 놓고 필리핀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대만과 불과 200㎞ 떨어져 있는 배시해협은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의 관문이다.
친중 노선을 유지해온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물러나고 친미 성향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미군과의 연례 합동훈련인 발리카탄 훈련을 남중국해에서 실시하는 등 미국과 연대를 강화해 중국의 남중국해 세력 확장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지난 9일 남중국해에서 주력 군함을 대거 동원한 실전훈련을 진행했다.
양국 간 분쟁은 세컨트 토머스 암초 주변에서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 공격을 가하는 등 무력 충돌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30일 필리핀은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해경선 2척에 물대포 공격을 가해 1척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이후 필리핀 내부에서는 자국 해경선에도 물대포를 장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