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전청약 제도 폐지를 결정한 것은 본청약이 줄줄이 지연되면서 당첨자들이 주거 계획에 차질을 빚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86개 단지·4만 5000가구의 본청약 시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대부분 지역에서 최장 2년까지 일정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되자 국토부는 사전청약 제도를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일단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한 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사전청약 제도를 아예 폐지할 계획이다.
사전청약 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적용됐다가 본청약까지 수년이 소요되며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아 폐기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기 집값이 급등하자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매수세를 흡수하고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2021년 7월 다시 도입됐다. 현 정부에서 민간 사전청약은 폐지됐지만 공공분양주택 ‘뉴홈(윤석열 정부의 공공주택 브랜드)’은 4차례에 걸쳐 1만여 가구의 사전청약을 진행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인 2021~2022년 사전청약을 시행한 단지들부터 본청약이 계속 미뤄지면서 ‘무용론’이 확산됐다. 지구 조성이나 토지 보상 등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물량을 끌어다 사전청약을 시행한 결과다.
당초 올 4월 본청약 예정이던 경기 군포대야미 A2블록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청약일을 2주 앞두고 본청약이 3년 미뤄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부지에 특고압 전력선이 지나는 송전선로가 있는데 한전과 협의가 지연되면서 이설하는 공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남양주진접2지구의 경우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 유물 등이 출토되면서 지난해 12월 예정이던 본청약은 2025년 하반기로 미뤄졌다.
이처럼 사업 변수가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이제까지 정부가 본청약을 진행한 사전청약 단지 13곳(6915가구) 중 예정된 본청약 시기를 지킨 곳은 양주회천 A24단지(825가구) 한 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청약까지 기간이 속절없이 길어지면서 당첨자 이탈도 심화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공공 사전청약 당첨자의 본청약 계약률은 54%에 그치고 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의 피해도 눈덩이다. 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본청약 예정일이 임박해서야 지연 사실을 통보하면서 계약금과 중도금 등 자금 마련 계획과 전월세 계약 일정 등이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보통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사전청약 때 고지한 본청약과 입주 예정일에 맞춰 전월세 계약 시기를 조절하는 데 본청약이 미뤄지면 추가 계약을 해야 하는 등 계획이 틀어진다. 전세대출을 받았던 이들은 추가 대출이자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본청약이 늦어지면 분양가 상승 리스크도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져야 한다. 실제로 본청약이 1년 늦어진 성남신촌 A2 59㎡의 경우 사전청약 시점 추정 분양가는 6억 8268만 원이었지만 공사비 급증 등으로 확정 분양가는 6억 9110만~7억 8870만 원으로 최대 1억 원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과 달리 민간분양의 경우 아예 사업이 엎어진 경우도 있다. 인천 서구 가정2지구 주택 사업은 2022년 사전청약을 완료했으나 올 초 건설사가 사업 취소를 결정했다. 이정희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청약 수요가 높아져도 다시 사전청약 제도를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요를 분산하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본청약 지연에 따른 당첨자들의 피해가 커 제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기존 사전청약 당첨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사전청약 단지 중 본청약이 6개월 이상 장기 지연되는 경우 계약금 비율을 10%에서 5%로 조정해 추후 잔금으로 납부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중도금 납부 횟수도 2회에서 1회로 축소하고 지연 사업 단지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앞으로는 본청약 예상 지연 기간과 사유를 최대한 일찍 안내하기로 했다. 우선 3기 신도시인 △남양주왕숙 2 A1(762가구) △하남교산 A2(1056가구) 등 올해 9~10월 본청약을 앞둔 7개 단지 당첨자들에게 이달 중 사업 추진 일정을 개별적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이들 단지는 적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본청약이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전청약 제도 폐지로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전청약 중단이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공공분양주택 ‘뉴홈’ 1만 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모두 철회하고 추후 주택 착공 시점에 본청약을 받기로 했다. 올해 본청약을 진행하는 공공분양 단지는 총 13개 단지, 6899가구로 이미 기존에 사전청약을 진행했던 단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