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여명]청와대 개방 같은 결단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청와대다. 전국 주소 체계가 2014년 도로명 중심으로 바뀐 후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거주하고 일하던 구중궁궐. 종로가 ‘정치 1번지’로 불린 것도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나고 결정된 청와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청와대가 완전히 개방돼 국민 품으로 돌아온 지 2년여가 흘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대선 공약 이행과 정치 개혁을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 결단을 행동하고 실천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당과 야권 인사들이 ‘준비 안 된 결정’ ‘비용 낭비’ 등을 거론하며 당시 거세게 반발하고 비판해 정권이 바뀐다면 청와대가 ‘금지(禁地)’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3년 후 어떤 ‘간 큰’ 대통령이 나온다 해도 국민의 공유 자산이 된 청와대를 독점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다.



윤 대통령이 특권 내려놓기의 1번으로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고 새로운 대통령실 부지를 물색한다고 했을 때 수많은 반대파 인사들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비선 가능성을 제기하며 폄훼하기 바빴다. ‘대통령실 이전’ 공약을 내걸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필두로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의 비판이 도드라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광주에서 5·18 기념식 후 “국민주권을 위임받는 대신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기죄보다도 더 엄중한 범죄행위”라고 꼬집은 선거공약 불이행의 엄중함을 새기면 ‘격세지감’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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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2년을 넘어선 지금 상당수 국민은 윤 대통령이 왜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고 섣불리(?) 결단을 이행했는지, 문 전 대통령이 왜 국민을 속이는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끝까지 청와대에 남았는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곳.’ 풍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천하제일 명당이라는 경복궁을 굽어보며 북악산 아래 위치한 청와대에 가보면 그 마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방 2년도 안 돼 청와대가 5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들인 건 ‘무릉도원’ 같은 신세계여서다. 여러 차례 청와대에 가본 윤 대통령도 천신만고 끝에 대선에 승리한 후 최대 전리품인 청와대를 어찌할지 고심했다며 “일단 들어가면 못 나올 것 같았다”고 솔직히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새로운 대통령 관저를 마련하는 데 수백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당연한 투자를 ‘세금 낭비’처럼 호도한 비판들은 얼마나 짧은 소견이었는지 이미 여실해졌다. 한두 명이 독점하고 국민 0.01%도 안 되는 관료나 정치인들이 이용했던 청와대가 활짝 열려 경복궁과 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촌·북촌, 송현공원과 어울리며 국가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해 일으킨 경제적 효과는 보수적으로 따져도 용산 이전 비용의 10배는 넘을 것이다.

청와대를 오늘이라도 처음 가보는 사람은 그 위용과 경치에 놀라면서 ‘제왕적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왕조 시대의 구조와 행정적 비효율에도 혀를 내두를 것이다. 지금은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한데 모여 일하지만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일하는 본관과 비서관·행정관이 근무하는 비서동이 멀찍이 따로 떨어져 있다. 비서들이 급한 보고라도 할라치면 차를 타야 할 정도여서 문 전 대통령 시절 비효율을 줄이려 대통령이 비서동에 사무실을 두기도 했다지만 본관 역시 그대로 사용했다.

청와대 개방은 일부가 누리는 특권이 해체돼 공익이 될 때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웅변한다. 아울러 국민을 위해 당연시될 것 같은 기득권 타파가 결코 쉽지 않은 지난한 과제임을 깨닫게 한다. 정권이 시작도 하기 전에 내린 결단이어서 온전히 이행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제 열흘 후면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다. 여야의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고 국회의장 후보자도 나왔지만 선거 때 열을 올려 약속했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어쩐 일인지 찾아볼 수가 없다. 원내 3당인 조국혁신당이 회기 중 골프 금지와 국내선 항공 비즈니스 탑승 금지 등을 다짐했지만 충분치 않다. 윤 대통령이 청와대 개방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과 같이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처럼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핵심 권한이 시대 상황에 맞게 조정되도록 임기 시작 전부터 진지하게 논의하기 바란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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