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지 넉 달 가까이 됐지만 기업 10곳 중 8곳은 여전히 법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도한 의무·처벌과 불명확한 규정 탓에 법 시행 시 소규모 기업 현장에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일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공사 50억 원) 미만 466개 기업을 대상으로 중대법 준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7%는 아직도 법 의무 준수를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조사(94%)와 비교해서는 의무 준수를 완료하지 못한 비율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중대법 의무를 따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중대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으로, 2022년 5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됐다. 중소기업계의 강한 반발에도 올해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됐다.
중대법 의무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과 복잡한 법안 내용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 기업의 47%가 ‘전문인력 없이 사업주(현장소장) 혼자 안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서’라고 밝혔고 ‘(법안의) 의무 사항이 너무 많고 복잡해서’라는 답변이 36%로 뒤를 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의무 내용이 구체적이 않아서(12%)’ ‘법을 준수할 준비 기간이 부족해서(5%)’라는 이유도 있었다.
경총 관계자는 "소규모 기업은 안전관리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중대법이 요구하는 복잡한 매뉴얼과 절차서를 갖추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컨설팅 지원과 함께 신속히 법령을 개정해 의무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소규모 기업의 중대법 준수를 돕기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업종 특성에 적합한 매뉴얼·가이드 보급(35%)’ ‘안전 설비 비용 지원 확대(23%)’ ‘전문인력 지원 확대(22%)’ 등을 꼽았다. 소규모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이 지속적이지 않은 컨설팅보다는 매뉴얼·가이드 제공, 설비 개선 및 전문인력 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 본부장은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중대법 재유예 등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산재 예방 지원도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