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사상 최고로 여기는 대표적인 황제는 부친을 도와 나라를 세운 당 태종 이세민이다. 그가 7세기 무렵 ‘정관의치(貞觀之治)’라는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의 면전에서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재상 위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위징이 태종 앞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한 것이 수백 번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고구려 정벌에 실패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당 태종이 “위징이 살아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13세기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아예 쓴소리를 하는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뒀다. 지역마다 가톨릭 성인 추대가 넘쳐나자 성인 후보자들의 덕행과 기적 행위 주장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일을 맡겨 객관적 평가가 이뤄지게 했다. 미소 냉전 시기에 미군은 ‘악마의 변호인’을 원용한 ‘레드팀(red team)’을 조직했다. 모의 군사훈련을 하면서 팀 내에 가상의 적을 만든 것이다. 이들이 내부 취약점을 발견하고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아군인 블루팀의 조직과 전략을 점검하고 보완했다. 레드팀은 군사·국방 분야는 물론 일반 기업, 로펌, 미디어,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구글·IBM·MS·인텔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에서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으로 약점을 발견해 의사결정권자에게 통찰을 제공한다. 레드팀이 리더 개인이나 집단의 편향적 사고가 ‘심리적인 덫’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철회하거나 수정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일부 품목의 직접 구매 금지 정책 철회,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 수정, 공매도 재개 논란 등이다. 새로운 정책에 따른 부작용과 반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레드팀을 두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강력한 권력이나 영향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일수록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쓴소리를 하는 조직을 만들어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나라와 기업을 건전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