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본질을 알 수 없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주 120시간 이상 ‘하드코어 모드’로 일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거의 매년 세상과 격리된 채 일주일을 꼬박 보내는 ‘연례 의식’이 있다. 여름마다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블랙 록(Black Rock)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축제. ‘버너(Burner)’로 불리는 8만 여명의 축제 참여자는 40도를 훌쩍 넘는 더위를 견디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 도시를 건설한다.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밤이다. 이들은 애써 건설한 도시의 조형물을 모두 불태워 없앤다. 일상 세계를 ‘디폴트 월드’로 칭하고 블랙 록 사막을 고향이자 ‘리얼 월드’로 구분하는 이들이 디폴트 월드로 돌아가기 전에 정화하는 의식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버닝맨 축제가 접근성이 좋았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해변에서 무료로 진행됐을 때는 인기 없는 지역 축제에 그쳤다는 데 있다. 하지만 사막으로 장소를 옮기고 참가비를 유료로 받기 시작하자 네바다주는 물론이고 미 전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축제로 바뀌었다. 머스크 외에도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알파벳(구글 모회사) 공동 창업자 등 테크 거물들도 다녀갔다.
버닝맨 축제는 ‘의례’에 대한 여러 가지 함의를 던져준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의 인류학 교수인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가 저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원제 Ritual)’를 통해 파고든 것도 이 부분이다. 지갈라타스 저자는 현장 답사와 심리학 연구로 쌓은 20년 간의 연구를 다방면으로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의례에는 세 가지 성격이 필요하다. 엄격할수록, 자주 반복될수록, 전통이 길수록 의례에는 참가자들이 따르게 되는 권위가 부여된다.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 단체에서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가입비’가 비쌀수록 해당 의례를 중요시하고 이 일원이 되려는 인간의 열망은 더욱 커진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다.
1970년대에 법학자 딘 켈리는 미국에서 진보주의 교회가 쇠퇴하는 반면 보수주의 교회가 번창하는 이유를 찾다가 엄격한 자격 조건을 부과하는 교회가 출석률이 더 높고 헌납도 많이 하며 사회적 유대 관계가 강해 교인의 이탈률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엄격한 보수주의 교회는 교인들의 옷과 생활 방식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점이 신도의 눈에는 오히려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대학의 남학생 클럽에서 동상 위에 올라가 소변 보기, 여학생 기숙사에서 속옷 훔쳐오기 등 비이성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제시해 값비싼 ‘가입비’를 치르게 하는 것과 유사하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 입부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계단식 강의실의 맨 아래에 서있는 지원자였던 기자는 수십 여명의 동아리 선배들이 던지는 강도 높은 면접을 한 시간 가량 받았다.
시종일관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던 선배들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책상을 울리는 박수를 몇분간 치면서 환영 인사를 했다. 극에 달했던 공포심은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는 감격으로 바뀌며 아드레날린이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이 같은 의식을 통해 인간의 뇌 속에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엔테오겐(신성을 만들어내는 물질)’이 형성된다고 전한다.
이는 불확실성이 높은 생활 속에 통제감을 확보해 불안을 낮추려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된 결과다. 통제감 외에도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생존 확률까지 높이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낮을수록 더 의례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팬데믹 이후는 어떨까. 상호작용이 줄고 의례가 사라지는 가운데 의례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인간은 어떤 대안을 찾을까. 팬데믹 기간 늘어난 ‘루틴’ ‘리추얼’에 관한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들이 실마리를 보여준다. ‘갓생’을 살겠다며 모닝 루틴부터 나이트 루틴까지 숨 가쁘게 채워가는 우리의 모습 역시 ‘의례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위한 고군분투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