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동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 시멘트 가열에 쓰이는 연료 저장고 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콕 찌르는 냄새가 풍겨왔다. 폐비닐,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순환자원 연료가 발효하면서 나는 향이다. 홀심시멘트 마너스도르프 공장은 지난해 기준 전체 연료의 90%를 이런 순환자원 연료를 사용해 시멘트를 가열한다. 이는 한국 시멘트업계 평균치(35%)는 물론 유럽 평균치(53%)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제조 공정에서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기 위해 유럽 시멘트 업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대부분 공장에서 순환자원 연료 사용률이 90%에 달하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그리스 또한 시멘트에 탄소 배출량이 적은 원료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탄소 저감에 앞장서는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대체 원료를 사용하는 데 규제가 엄격히 적용되면서 오스트리아, 그리스와 같은 선두 주자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체 연료 및 원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21일 오후 찾은 그리스 테살로니키 인근 타이탄사 에프카르피아 시멘트 공장에서는 시멘트 원료에 폐콘크리트, 석회석미분말 등 혼합재를 섞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시멘트 1t을 만들면 이산화탄소를 700㎏ 배출하게 되는데 배출량 대부분이 석회석을 가열해 만드는 시멘트 주원료 ‘클링커’에서 나온다. 대체원료는 시멘트 내 클링커 사용 비중을 줄이는 대신 폐콘크리트나 벽돌 등 대체 원료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게 된다.
유럽 시멘트 업계는 탄소 저감을 위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홀심 시멘트사가 마너스도르프 공장 내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투자한 금액은 1억 3000만 유로(한화 약 1925억 원)다.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베르톨트 크렌 홀심시멘트사 중부 유럽 권역 최고경영자(CEO)는 “(투자를 통해) 마너스도르프 공장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 대비 7만t 줄였고 오스트리아 내 홀심의 시멘트 공장 세 곳을 합하면 이산화탄소 감축량은 연간 21만t에 달한다”며 “이는 자동차 12만 대를 없앤 것과 같은 효과”라고 강조했다.
유럽 시멘트사들이 ‘탈탄소 러시’에 나선 배경으로는 유럽연합(EU) 차원의 탄소 규제가 꼽힌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분야의 모든 제품은 탄소 배출량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보고서를 토대로 제품별 탄소 배출에 따른 유료 인증서 구매를 강제해 탄소 저감을 유도한다. 피터 호디노트 전 유럽시멘트협회장은 “현재 시멘트 1t 가격이 약 90유로인데 앞으로 탄소 배출에 따른 비용이 1t당 100유로 가량 발생할 수 있다”며 “넷 제로는 유럽 기업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EU CBAM은 유럽으로 시멘트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게도 적용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의 탈탄소 행보는 더딘 편이다. 원인으로는 각종 규제가 꼽힌다. 다양한 혼합재를 활용해 클링커 비중을 최대한 줄이는 혼합 제품의 경우 국내에서는 혼합재 비중을 10%까지만 쓸 수 있게 돼 있다. 비중이 50%에 달하기도 하는 유럽 친환경 시멘트에 비해 허들이 높은 셈이다. 김진만 시멘트그린뉴딜위원회 위원장(공주대 건축학부 교수)은 “국내 시멘트 업계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혼합재 사용 기준 완화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