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신용거래 융자 규모가 8개월 만에 최대인 2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다시 주춤하고 있지만 올 초부터 이어진 금리 인하 기대감과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에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0일 코스피는 사흘 연속 빠지며 전날 대비 41.86포인트(1.56%) 하락한 2635.44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연말 코스피 종가(2655.28)보다도 낮은 수준이라 빚투족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9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9조 6332억 원으로 지난해 9월 27일 19조 7029억 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용융자 잔액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매수(신용거래)한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잔액 규모가 커질수록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선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주가 상승이 예상될 때 이용되는 투자 상품 중 하나다.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해 7~8월 20조 원을 넘어섰다가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가 단속에 나서면서 같은 해 11월 16조 원대까지 급감한 뒤 꾸준히 증가해왔다.
신용융자 잔액은 이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모두 늘고 있다. 코스피의 경우 29일 1조 5409억 원, 코스닥은 9조 923억 원으로 각각 지난해 9월과 10월 이후 최대 수준을 보였다. 코스피는 지난해 11월 8조 7505억 원까지 떨어졌다가 이달 10조 원대로 올라서며 고공비행하고 있다.
신용융자는 특히 반도체와 2차전지 종목에 가장 많이 집중됐다. 거래소에 따르면 29일 기준 삼성전자(005930)의 신용융자 잔액이 6807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가 5034억 원, 셀트리온(068270)이 3840억 원, 포스코퓨처엠(003670)이 2814억 원, SK하이닉스(000660)가 2496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반도체 ‘2톱’에만 1조 원가량의 빚투가 몰린 것이다. 코스닥에서는 에코프로비엠(247540)(2528억 원), 에코프로(086520)(2000억 원), 삼천당제약(000250)(1351억 원) 순으로 신용융자가 많았다.
특히 올 들어 증가한 신용융자 잔액은 삼성전자가 400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042700)도 각각 1070억 원, 86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반도체의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순환매가 벌어지자 뒤늦게 주가 상승 랠리에 뛰어든 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코스닥에서도 HPSP(403870)(615억 원)와 이오테크닉스(039030)(449억 원)도 순증감액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닥에서는 파마리서치(214450)(461억 원), 알테오젠(432억 원), 삼천당제약(425억 원)도 순증감액 상위 종목을 차지하며 바이오주에 베팅하는 투자자들도 눈에 띄었다.
빚투가 늘었음에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종가 대비 이날까지 주가가 6.37% 떨어졌다. 최근 외국인투자가의 이탈이 직격탄이 됐다. 외국인은 이달 24일 이후 4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다. 특히 29일에는 4265억 원 순매도하며 지난해 7개월 이후 최대치를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각각 38.30%, 167.91%의 수익률을 보인 것과 대조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엔비디아의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가 빚투족의 운명을 갈랐다는 분석이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파업이 어떻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최근 주가가 많이 빠졌지만 펀더멘털에서 달라진 것은 크게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주가 전망이 괜찮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정민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여전히 HBM 공급 부족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라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 공급망에 합류할 수 있느냐 여부가 주가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