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는 손흥민 같은 ‘스타급 교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과감하게 스카웃 해와야 합니다.” (이건우 DGIST 총장)
“대한민국 정도 되는 선진국이라면 이제는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김성근 포스텍 총장)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공계 대표 대학 5곳의 총장이 한 곳에 모여 한국의 과학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미래 전략을 제시했다. 2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4의 특별 행사로 열린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총장 포럼’에 참여한 4대 과학기술특성화대학(KAIST, GIST, DGIST, UNIST)과 포스텍 총장은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해야 한다”며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광형 KAIST 총장, 임기철 GIST 총장, 이건우 DGIST 총장, 이용훈 UNIST 총장,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유재준 전국자연대학장협의회 회장(서울대 자연대학장)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 토론에서 각 대학의 생존 전략과 인재 육성 방안 등을 폭넓게 제시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실제 연구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책을 요청하면서 ‘따끔한 조언’을 던졌다.
◇“정권 바뀔때마다 전략기술 흐지부지…기초과학 투자도 늘려야”=5개 대학 총장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전 세계 주요 선진국과 한국의 첨단 기술 경쟁력을 비교했다. 사회를 맡은 유재준 학장은 “한국의 첨단 기술 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국가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어떤 지원책이나 개선점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이용훈 총장은 “우리가 굉장히 오랫동안 하고 있던 질문”이라며 “우리는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움직여야 한다는 대명제는 계속 띄워왔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 12대 국가전략기술이라는 방향을 내세웠는데 약간 ‘옛날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에서 정해주고 우리가 따라가는 그런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코로나 시대에 모더나 백신이 나온 것 같은 혁신은 전략기술에서 나온 게 아니라 기초 연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초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기초 연구를 더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투자를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건우 총장은 “정부의 12대 국가전략기술은 잘 선정됐다고 보지만 과거에도 이런 건 많이 있었고 잘 안됐었다”며 “정권이 바뀔때마다 흐지부지 되면서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인데 전략 기술 자체는 잘 선정된 것 같으니 이걸 일관성 있게 잘 유지해갈지에 대해 정부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성근 총장은 “중요한 산업을 선정하고 집중 투자하는 건 좋지만, 문제는 자칫 그쪽으로만 쏠리다보면 정작 우리가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하는 부분은 소홀해질 수 있다”며 “당장 응용이 안되지만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 연구하는 건 국가적으로 굉장히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도의 선진국이라면 이제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기초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형 총장은 “국가전략기술 연구에는 큰 그림을 그리는 연구 기획 역량이 필요하다”며 “집단 연구가 필요하고, 글로벌한 국제 공동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한다. 또 어려운 과제가 나타났을 때 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세계 연구자들이 찾아오는 대학 만들어야”…인재 양성 해법 제시=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인 ‘두뇌급 인재’ 양성 방안을 두고도 각 총장들은 심도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광형 총장은 “KAIST의 인재 양성 전략은 첫째, 창의적인 인재를 기른다. 둘째, 연구를 할 때 세상에 없는 걸 한다. 세 번째는 세계적인 파트너들과 교류한다”라며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어느 랩에서든지 이 세상에 없는 거 한 개씩은 하도록 하고, 글로벌로 가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대학원은 마음껏 뛰어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장이 돼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학생들의 복지가 더 좋아져야 한다. 또 적극적으로 해외 인력을 유치하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훈 총장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먼저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연구들을 통해 미래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풀어볼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춰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대학들은 모두 기획력이 탁월하고 재정적인 능력이 상당히 세다”며 “새로운 연구 분야에서 앞서 나가려면 미래전략실을 만들어 기획력을 갖추고 재정적인 기반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건우 총장은 “DGIST는 설립 초기부터 ‘무(無)학과’로 시작을 했다. 융합 교육을 처음부터 하고 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며 “또 하나는 해외에 학생들을 보내는 것에 상당히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제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대학들이 좀 더 글로벌라이즈(국제화)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총장은 ‘좋은 대학’의 조건에 대해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교수들이 자기의 일자리로 오고 싶어하는 대학”이라며 “이에 더해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와주는 대학, 또 기업체들이 과제를 맡기려고 하는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이다. 이것들이 충족되려면 남들이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성근 총장은 “대체 불가능한, 그 사람을 제거했을 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인재들이 대학·대학원에서만 공부할 게 아니라 사회나 실험실, 기업 같은 실제 현장에 가서 경험하고 다시 돌아와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공계 공부가 힘든 이유는 공부 자체도 힘들지만 그걸 어디다 써먹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특히 힘들기 때문”이라며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와 새로운 시각에서 배우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과학기술 분야를 훨씬 더 넓게 이해하고 융합 인재로 커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기철 총장은 “기술 패권 전쟁에서,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 기술 개발 측면의 연구 뿐 아니라 정책과 전략, 법과 윤리적인 제도 정비까지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며 “GIST는 AI 정책전략대학원을 개설해 AI로부터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하는 과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딴 짓’을 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며 “이른바 ‘무한도전 프로젝트’인데 학생들이 아무 그림이나 그리고, AI로 작곡도 하고 하다보니 한 회사가 창업됐다”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기업 2~3배 버는데 의대 가는게 당연…처우 개선해야”=의대 선호,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 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공유됐다. 이용훈 총장은 “학생들이 줄고 있는데다 과학기술계의 똑똑한 아이들은 다 의대로 빠지고 있다. 외국으로 유학간다는 학생을 잡기도 힘들다”며 “우리나라가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확보하려면 일단 처우 개선부터 국제적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는 기초과학을 한 학생들을 일생 일자리와 매칭을 하는 걸 생각해야 한다”며 “기초과학하다가 학원 선생을 하는 이런 모델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건우 총장은 “의대를 가면 정년 없이 보장되고 수입이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의 2~3배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의대를 가려는 게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며 “국가 발전을 위해 실제로 연구를 해야 하는 인력들에게 1년에 1억씩 준다면 저는 전혀 파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두면 언젠가 돈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김성근 총장은 “정부의 대학 지원 방식이 연구비를 통한 간접 투자인데 이제는 정부에서도 대학에 직접 투자를 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과학기술자를 리스펙트(존경)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