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내 공급과잉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후판 물량이 지난달 월간 기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후판을 가장 많이 쓰는 조선사들이 중국산 제품 사용량을 늘리고 이를 가격 협상 카드로 사용하면서 철강사들의 이중고는 커지고 있다.
10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5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15만 3000톤으로 4월(10만 2000톤)보다 5만 1000톤(33%) 늘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다.
올 5월까지 58만 9000톤(누적)이 수입되며 중국산 철강 수입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지난해 동기(52만 4000톤)보다 10% 증가했다. 중국이 자국 경기 침체로 철강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후판을 싼값에 국내로 수출하는 밀어내기 현상이 극에 달한 것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장벽을 강화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렴한 중국산 후판 증가로 국내 철강사들이 생산한 제품이 내수 시장에서 차지하는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올 4월까지 포스코·현대제철 등의 후판 내수 판매는 201만 7000톤으로 지난해(221만 6000톤)보다 10%가 줄었다. 특히 후판 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업의 호황 분위기 속에도 철강사들은 전혀 수혜를 입지 못하고 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사들 역시 10%가량 저렴하고 품질 차이도 사실상 없는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을 키우는 중”이라며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도 조선사들이 중국산 후판을 빌미로 가격을 낮추려고 하지만 철강 업계는 더 낮출 수 없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후판 유통가는 97만 원이다. 반면 중국 수입 물량은 80만 원 후반 정도로 알려졌다.
국내 철강사들로서는 후판 수요 감소 속 감산 등의 뾰족한 대응 방안도 없다. 최근 전기로를 사용하는 동국제강은 야간 조업을 택하며 전기료라도 아끼고 있지만 고로 중심으로 후판의 핵심 재료인 슬래브를 생산하는 포스코 등은 상황이 다르다. 철강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고로는 24시간 돌려야 하기 때문에 국내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고 즉각적으로 감산을 택할 수 없다”며 “철강 전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라 다른 제품 생산으로 대체하기도 어려워 재고만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해 4월까지 국내 중후판 재고량은 약 38만 5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만 6000톤 대비 약 6만 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