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이 응급실 콜(call·호출)이 쏟아지는데 어디를 갑니까.”
15일 대한신경과학회와 대한뇌졸중학회가 공동 주최한 ‘급성 뇌졸중 인증의’ 공청회에서 나정호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대한뇌졸중학회 뇌졸중 인증의 TFT 위원장)는 집단 휴진에 참여하느냐는 질문에 “중환자실도, 병실도 꽉 차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뇌졸중의 80%를 차지하는 뇌경색 치료의 핵심은 ‘골든타임’ 사수다. 뇌경색 발병 이후 1시간 30분 이내 혈전용해제(tPA)를 투여하면 치료받지 않은 환자보다 장애가 남지 않을 가능성이 3배가량 높다. 반대로 3시간을 넘기면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나 교수는 “급성 뇌졸중 의심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빨리 진단하고 재개통 치료를 시행했는지에 환자의 여생이 달려 있다”며 “그런 환자를 나 몰라라 할 의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뇌졸중 진료 의사들에게 휴진 같은 집단행동은 고려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날 공청회는 올 하반기 본격 시행되는 ‘급성 뇌졸중 인증의’ 제도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현재 사망 원인 4위인 뇌졸중은 국내에서만 연간 10만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에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성 뇌졸중 인증의는 뇌졸중 의심 환자가 도착했을 때 응급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환자를 감별하는 ‘트리아지(triage·환자 분류)’ 등 전문 진료 역량을 갖춘 신경과 전문의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두 학회는 전국 어디에 거주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뇌졸중 안전망’ 구축을 위해 전문 의료진 확보가 시급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10년 가까이 준비 기간을 가졌다. 최근 10년간 응급실 또는 입원 병실에서 뇌졸중 환자 진료를 100건 이상 담당한 전공의, 전임의, 전문의, 중환자실 전담의 등을 대상으로 다음 달부터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김승현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최근 필수·지역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지 않나. 급성기 뇌졸중 치료는 대표적인 필수의료 영역”이라며 “지역별로 전문적인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거점 센터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하려면 인증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뇌졸중 인증의 도입과 관련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뇌졸중은 분초를 다투는 질환의 특성상 응급 콜과 당직이 잦다. 실제 신경과 1년 차 전공의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진료 건수는 연간 406.6건으로 같은 연차의 다른 임상 진료과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가뜩이나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위험 부담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인증의 제도가 자칫 인력난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신경과 전문의가 1~2명에 불과한 병·의원에서는 인증의 제도를 챙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 등을 반영해 진입장벽도 손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해 부담이 크다.
전문 의료진이 24시간 상시 모니터링하며 급성기 치료를 제공하는 뇌졸중 집중치료실(Stroke Unit)의 수가는 종합병원 기준 하루 13만 3320원이다. 간호간병통합 다인실 병실료(16만 710원)보다도 저렴하다.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적자를 감수하며 SU을 운영하는 것만도 부담이니 의료진 처우가 좋을 수가 없다. 밤낮 없이 응급실 전화를 받으며 온콜(호출당직)을 서는 뇌졸중 전임의가 24시간 SU 근무를 섰을 때 받는 수당은 2만7730원에 불과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대다수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넉달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복귀한 전공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신경과 역시 400명 가량의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해 남은 의료진들의 부담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신경과 (전공의 복귀율이) 5%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당장 내년도 전문의 시험을 치를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학회가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인증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고 급성기 뇌졸중 치료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현장에 남아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은 닥쳐올 휴진보다 10~30년 뒤 미래가 두렵다고 했다. 넉 달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 속에서 이들은 버티게 하는 동력은 전공의들이 돌아오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김 이사장은 “현재 의료계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한의학회와 동일하다”면서도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의사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진심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 교수는 “내년에 전문의가 한 명도 배출되지 않고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임계점을 넘는 순간 (의료 현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의정 갈등이 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