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환율이 좀 안정되면 유럽의 금리 인하 추세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김정식 전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내수 침체로 서민 생활 어렵고 금융 부실 부작용 커져

美 기술혁신으로 경기 식지 않아 금리 인하 늦어질 것

中기술에 추월당한 韓, 20년 먹고살 신산업 육성해야

저성장 시기 국제기준보다 세율 높으면 자금 공동화

연세대 명예교수인 김정식 전 한국경제학회장이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로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재정을 풀더라도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연세대 명예교수인 김정식 전 한국경제학회장이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로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재정을 풀더라도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글로벌 통화 정책 전환(피벗) 시점을 둘러싸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의 중앙은행은 이달 초 기준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었지만 미국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 어느 길을 가야 할까.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인 김정식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17일 “내수 침체로 서민들의 생활이 굉장히 어렵고 하반기로 갈수록 금융 부실이 커질 것”이라며 “환율이 좀 안정되면 유럽의 추세를 따라가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 정책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재정이 악화하는 만큼 건전성을 악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완화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캐나다은행 등이 이달 초 기준금리를 내리자 글로벌 금리 인하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경기가 호황이어서 기준금리 인하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반면 유럽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침체가 심해 좀 빨리 내려야 할 상황이다. 유럽은 침체가 심하면 금융 부실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이 내리기 전에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금리를 내리면 강달러 때문에 환율이 올라가고 수입 물가가 높아지는 문제들이 생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5.25∼5.5%로 7회 연속 동결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올랐다.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낮아져야 금리를 내릴 수 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대선이 11월에 있지만 연준이 정치적으로 독립돼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가는 중동 전쟁이 소강상태인 데다 하절기여서 안정돼 있지만 11월 이후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또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기술 혁신이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등으로 3%대로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미국의 경기가 쉽게 식지 않아 금리 인하가 지연되고 고금리가 상당히 오래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금융 정책을 어떻게 펴야 하는가.

△한국은행은 미국이 금리를 내린 후에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물가는 2%대로 낮지만 공공·서비스 요금 인상 요인, 농산물 가격 오름세에다 유가 상승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특히 환율이 높아져 수입 물가가 오르는 것을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문제는 내수 경기 침체로 우리 서민들의 생활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인해 저축은행 등의 금융 부실이 하반기로 갈수록 커질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수요견인형이어서 금리를 높이면 수요가 안정된다. 우리나라는 비용상승형으로 유가나 환율 등이 낮아져야 물가를 잡을 수 있지, 금리를 높여 잡는 건 쉽지 않다. 고금리가 직간접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는 측면이 있지만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린 뒤에 내릴 것이냐, 유럽의 금리 인하를 따를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동산 PF, 자영업 부채 등 금융 리스크에 대한 대응 방법은 없는가.

△내수 부양 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 금리를 조기에 내리든지, 재정을 푼다든지, 부동산 관련 세제를 유연하게 하든지 여러 방법들이 있다. 부동산 세제는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재정 정책을 쓸 수 있는 환경은 좋아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가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로 5.8%였는데 지난해 3.9%로 낮아졌다. 3%대의 수준은 여전히 높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괜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정을 확대하더라도 저성장과 고령화 추세로 세수가 줄고 복지 수요는 늘어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장기적으로 악화하는 게 불가피한가.

△우리나라는 공무원, 공기업 직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퇴직하도록 돼 있다. 노후 소득이 거의 준비돼 있지 않다. 이러니 근로자는 퇴직 후를 감안해 임금을 많이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기업은 조기 퇴직으로 대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조금 적게 받고 오래 근무하는 일본 방식과 다르다. 결국 50대에서 10년 동안 거의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공공 일자리 등으로 먹여 살려야 한다. 정부가 돈을 풀게 되니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주택값도 높아질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우니 임금도 오를 수 있다. 개방경제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환율 상승으로 살림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남미가 그런 경험을 이미 했다. 환율이 높아지면서 중진국의 문턱에서 무너지는 사태를 겪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2%대 붕괴가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잠재성장률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성 향상, 인구 증가 등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인구 증가는 저출생으로 어려워졌다. 그러나 신기술 개발 여건은 거의 산업혁명 시대와 비슷할 정도로 좋아졌다. 전기차·배터리·바이오·드론 등에서 신기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도체로 20년 동안 먹고살았듯이 신기술로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면 앞으로 20년 동안 잘 지낼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조선·철강·전자 등 주력 산업을 넘겨줬지만 새로운 산업을 찾지 못해 30년의 경기 침체를 겪었다. 우리도 주력 산업을 중국에 물려주고 신산업을 찾아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 여건은 굉장히 좋은데 투자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 성형주 기자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 성형주 기자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신산업 육성을 지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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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또 민간 기업이 기술 개발 리스크를 덜도록 도와야 한다. 신산업 정책을 쓰자는 것이다. 인력을 양성하자면 교육 체제 개편이 필요한데 의사 파업처럼 이익집단이 이익을 공동으로 취하기 위해 집단행동으로 이를 가로막는다. 제도를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이익집단의 영향을 받는다. 기술 진보를 이루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제도를 바꿔야 하지만 어렵다. 그래서 잠재성장률 높이기가 어렵다. 신산업 정책에 장기 비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되면서 법과 제도 개선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회가 법을 통과시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국민들이 정책을 쉽게 이해하도록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핵심 정책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국가의 장기 비전은 왜 필요한가.

△장기 비전이 있어야 국민들이 신뢰하고 동참한다. 기업도 미래가 밝아야 투자할 수 있다. 중국은 20년·30년의 비전을 가지고 강력하게 밀고나간다. 우리 정치권은 권력 쟁취, 정쟁에만 빠져 있다. 5년 뒤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할 것도 아니라면서 신경 쓰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호기가 찾아왔는데도 신산업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사고 있다. 우리 경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고성장의 시기에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높게 세금을 매기거나 규제를 강화해도 고수익을 내고 수익률이 높으니 국내에 투자한다. 그러나 저성장 시기에는 법인세나 양도소득세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높게 과세하면 자금이 다 빠져나가 공동화하고 나라가 망하게 된다.

-중국의 추격 속도가 너무 가파른 것 같다.

△이미 중국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기술을 추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통시장까지 중국에 먹히고 있다. 반도체 등 남은 몇 개의 기술도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적자를 낼 판이다. 미국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미국은 고금리 정책을 펴면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무역 적자가 악화하기 때문에 금리를 내린 후 무역 적자 해결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력하게 실시한다. 신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다. 정치권은 정쟁만 벌이고 노동생산성은 낮아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근년에 많이 오르며 자산에 따른 빈부 격차도 굉장히 심해졌다. 그러면 결국 국민은 세금으로 해결해주는 ‘큰 정부’를 요구하게 된다. 4·10 총선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앞으로 대선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통 산업이 물러나고 신산업이 부상하는 전환기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잘 대응하면 미래가 굉장히 밝아질 수 있다. 우선 신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정책 브랜드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부의 불평등도 완화시켜야 한다. 부의 80%가 주택 등 부동산 형태로 있는 만큼 주택 가격 안정이 중요하다. 집값이 비싸지는 것은 교통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심과 교외를 원활히 연결하는 교통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또 재정적 인플레이션도 경계해야 한다. 예전에 한은이 돈을 많이 찍어 화폐 인플레이션이 생겼고 그래서 한은을 독립시켰다. 지금은 재정을 확 풀면 경기가 좋아지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포퓰리즘적인 생각이 많이 퍼져 있다.

◆He is…

1953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동 대학 경제대학원 원장과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국제금융에 정통한 경제학자로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금융·국제분과위원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국제금융학회 회장,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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