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던 1952년 2월 9일. 경남 사천 출신의 27세 청년 이해권 씨는 아내와 아들 둘을 두고 6·25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숱한 전투를 치렀고 북한군의 총탄에 병상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겨우 죽음만큼은 비켜갈 수 있었다. 하사(현 상병) 신분이었던 1953년 7월 27일 고대하던 휴전을 맞았지만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휴전 이후 넉 달 뒤인 11월 24일, 대장에서 발병하는 질병인 이질로 인해 숨을 거뒀다.
6·25 참전 용사 이 씨의 둘째 아들 자윤(73) 씨는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의 손에 자라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변변찮은 교육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둘째 아들로서 ‘선순위 자녀’가 아닌 ‘차순위 자녀’였던 이 씨는 국가가 6·25 전몰군경 자녀에게 부여하는 모든 혜택에서 제외돼왔다.
이 씨와 같은 차순위 자녀들은 6·25전쟁 중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과 경찰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선순위 자녀 1인 외에는 국가유공자 유족증이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차순위 자녀들은 교육 지원, 취업 지원, 대부 지원, 세금 면제, 각종 교통수단 할인 등 혜택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다.
그나마 차순위 자녀들은 국가보훈법 개정 절차를 거쳐 지난해부터 ‘6·25 전몰군경 자녀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동순위 자녀가 2명 이상일 때는 △자녀 간 협의 △국가유공자를 주로 부양한 자 △균등 분할의 순으로 지급된다. 개정 전 국가보훈법은 선순위 자녀 1인만이 수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개정을 통해 겨우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차순위 자녀들이 수급 대상에 포함되면서 수급 인원은 늘어났지만 수당 규모가 제자리인 것이다. 선순위 자녀가 수령하던 금액을 차순위 자녀의 숫자만큼 나눠야 하는 탓에 형제가 많을수록 불리한 구조다.
특히 이 씨와 같이 ‘신규 승계 자녀’에 해당하는 유족은 더욱 불리하다. 현재 자녀 수당 지급 대상은 총 세 가지로 분류된다. 1998년 유자녀 보상법이 제정됨에 따라 그해 1월부터 전쟁 직후 모친의 재혼 등으로 양친이 모두 없이 자라온 ‘제적 자녀’와 1997년 12월 31일 이전에 모친이 사망한 자녀에게 해당하는 ‘승계 자녀’가 수당 지급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후 2015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1998년 1월 이후에 모친이 사망한 전몰군경 자녀들에게도 ‘신규 승계 자녀’라는 지위가 부여돼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
문제는 제적 자녀와 승계 자녀, 신규 승계 자녀들에게 지급되는 금액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제적 자녀와 승계 자녀는 현재 각각 월 169만 3000원, 137만 2000원을 받는다. 그러나 신규 승계 자녀의 수령 금액은 승계 자녀의 3분의 1가량인 월 51만 6000원에 불과하다. 즉 이 씨와 같은 신규 승계 자녀들의 차순위 자녀들은 선순위 자녀와 ‘콩 한쪽’을 나눠 먹어야 하는 처지다. 이에 일부 가정에서는 형제들끼리의 다툼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신규 승계 자녀 중 균등 분할 수급자 9660명 모두가 월 26만 원 이하의 금액을 받고 있다. 3자녀 이상인 4248명은 월 20만 원 이하로 수령 중이며, 균등 분할 지급 인원이 7명에 달해 월 7만 3000원씩을 나눠 가져야 하는 가정도 있다. 제적 자녀와 승계 자녀로 대상을 확대해도 현재 전몰군경 승계 자녀 중 균등 분할 수급자는 1만 9463명이며 이 중 월 26만 원 이하 수급자가 전체 50.6%인 9853명이다. 20만 원 이하 수급자는 4310명으로 22.1%에 달한다.
이에 차순위 자녀들은 수당 규모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손에서 힘들게 자란 자녀들의 처지는 장남 등 선순위나 차순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정부는 2020년 신규 승계 자녀 수당 격차 해소를 위해 중기 사업 계획을 수립해 제적 자녀의 56% 수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장 월 지원금을 모든 자녀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더라도 차순위 자녀에게 선순위 자녀 수당의 70% 수준이라도 차등 지원하는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장남에게만 지급하던 수당을 다른 직계 가족들까지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좋은 취지이지만 전반적으로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당장 모든 차순위 자녀들에 대해 선순위 자녀가 현재 받고 있는 금액을 동일하게 지급하기는 어렵겠지만 추후 보훈 시스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론화 작업을 거쳐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