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환율이 올라도 전보다 두렵지 않은 이유[양석준의 마켓인사이드]

양석준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위원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

‘최후의 보루 외화자산이 미래다’의 저자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1분기 말 현재 우리나라의 순(net) 대외금융자산은 8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단순히 말해 우리나라 입장에서 해외에 투자된 외화자산이 국내 투자를 위해 들어온 외화부채보다 많다는 뜻이다. 어려운 용어를 빌리자면 국제투자포지션(IIP·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이 그만큼 자산초과상태임을 의미한다.



순 대외금융자산에는 외환보유액이 포함돼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느덧 외환보유액의 두 배 수준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증가했다는 건 놀랍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2018년 초 4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반면 순 대외금융자산은 당시 3000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 이외의 민간의 외화자산이 그사이 엄청나게 증가한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순 대외금융자산은 양적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매우 양호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산 구성이 직접투자, 증권투자, 준비자산 등으로 적절히 분산돼 있고 부채도 주로 원화로 표시되어 있거나 만기가 장기인 구성이 많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무엇이 순 대외금융자산을 증가시켰는가. 가장 큰 요인은 2010년대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했다는 데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권투자자금 유입도 이어져 왔다. 이들은 환율의 하락요인이자 외환보유액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아울러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확대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형성했다. 그동안 정부 등의 시장안정화조치로 외환보유액의 사용이 빈번히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그 일부도 민간의 외화자산이 증가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뒤돌아보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부채초과상태였다. 해외에서 외자가 더 많이 들어와 환율안정에 기여하는 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고 거주자가 외화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허용은 미흡했다. 그러나 정책 전환에 힘입어 순 대외금융자산 규모가 급속히 증가해 5년 전부터는 외환보유액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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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는 무엇일까. 비록 숫자상이지만 대외금융부채가 외환보유액을 사용하지 않고도 민간차원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흥시장국의 굴레를 벗어나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IMF가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복원력(resilience)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산초과상태라는 것은 스톡(stock)의 개념이므로 플로우(flow)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수급의 불일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금융자산 증가 상당 부분을 국민연금 등 공공부문의 투자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금융 및 외환시장의 상황 변화에 대응해 자산 배분이 탄력적으로 조정되기도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외금융자산이 적절하게 환류될 수만 있다면 환율안정에 보다 기여할 수 있을 테지만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일정 수준의 외환보유액의 역할은 유효할 수 밖에 없다.

아시아 주요국가들의 외환보유액과 국제투자포지션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있다. 인도는 외환보유액 규모가 5000억 달러를 넘지만 3000억 달러가 넘는 부채초과상태이다. 싱가포르는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에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보다 자산초과포지션이 1000억 달러 이상 크다. 홍콩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외환보유액이 많지만 자산초과포지션 또한 그 이상으로 훨씬 크다. 싱가포르, 일본, 홍콩 모두 국제금융시장으로 발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같은 대열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을 필요도 있다.

한편 이렇게 변화된 여건에서도 일각에서는 아직도 외환보유액 확충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환율안정대책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넌센스다. 우리나라 환율은 이미 국제금융시장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적 성격의 외환보유액 등에 의존적인 정책 패러다임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외환보유액 등을 이용해 환율을 원하는 수준으로 관리할 수도 없고 예전처럼 시장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0년 전 이미 국제투자포지션(net IIP)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규모가 외환보유액의 두 배에 달하는 현재 시점에 금지옥엽이던 외환보유액이라는 경계선은 순 대외금융자산으로 확장돼야 한다. 이제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보다 미래지향적인 정책 플랜을 과감히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7월부터 정부가 시장 개장시간을 연장하는 등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규제와 관행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은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앞으로 보다 선진적인 외환 및 자본시장을 정착시켜 나가기 위한 순탄치만은 않을 장정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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