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올 상반기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에 크레딧 채권이 강세를 보이자 차환 또는 신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에 우호적인 시장 분위기가 조성된 덕분이다. 개인 투자자의 채권 투자도 활성화돼 채권 발행 수요는 하반기에도 견조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올 상반기 발행한 회사채(여신전문금융회사채권 제외)는 38조 4347억 원으로 전년 동기(35조 8366억 원) 대비 약 7.2% 늘었다. 상반기 발행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그룹 별로는 지난해 상반기 발행량이 1조 원대였던 한화(000880)와 신세계(004170) 그룹의 발행량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총 7000억 원을 조달하는 등 총 2조 2800억 원을 발행하면서 지난해 총 발행량(2조 3900억 원)에 근접했다. 신세계그룹(2조 1390억 원)의 경우 ‘아픈 손가락’인 신세계건설이 6500억 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다.
한진(002320)그룹(1조 1108억 원)은 아시아나 합병을 앞두고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대한항공(003490)이 8500억 원 원을 조달하면서 전년 발행 총액(7480억 원)을 넘겼다. 이 외에 CJ(001040)그룹(1조 2900억 원), LS(006260)그룹(6360억 원) 등도 상반기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전년 총액에 근접했다.
그룹별로 이슈가 많았던 SK(034730)·롯데·LG(003550)그룹의 발행량은 전체 대기업 회사채 발행량의 28.45%(14조 7310억 원)을 차지했다. 만만찮은 회사채 발행이 있었다는 의미다. 다만 SK그룹의 상반기 발행량(6조 9920억 원)은 전년 동기(7조 8640억 원) 대비 다소 줄었는데 이는 그룹 재무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기관투자가가 자금 집행을 재개하는 연초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상반기 회사채 발행 규모로 그 해 회사채 투자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상반기 회사채 발행액은 2021년(35조 6219억 원)까지 꾸준히 늘다가 2022년(26조 7001억 원)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급격히 줄었다. 고금리 부담에 채권 발행을 미뤘던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자금 조달을 크게 늘렸다. 시장에서는 연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에 발맞춰 한국은행 역시 하반기 적어도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3.50 → 3.25%)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반기에도 크레딧 채권 발행 및 수요는 호조세를 보일 전망이다. 특히 금리 인하(채권 가격은 상승) 시기에는 자본 차익을 얻으려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진다. 상반기의 경우 개인 투자자는 5조 1442억 원의 채권을 순매수했다. 전년 동기(4조 8535억 원) 대비 약 6% 늘어난 규모로, 상반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하반기에도 이런 투자 호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신한투자증권 채권전략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오는 8~12월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 회사채 약 20조 원어치의 차환을 위해 9월 수요 예측이 집중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기관들이 신규 대체 투자를 거의 중단하면서 여유 자금의 채권 투자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며 “연기금, 공제회 등 다양한 기관의 자금이 주로 레포펀드 방식으로 꾸준히 집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