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서 추가경정예산 요건에 ‘취약 계층 생계 안정’과 ‘양극화 해소’를 추가하기로 한 데 대해 역대 한국재정학회장들이 “만성적인 지출 확대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소득 양극화는 본예산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며 “본예산으로 해결 가능한 사안을 추경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그저 돈을 더 풀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1일 추경 편성 요건에 ‘양극화 해소와 취약 계층의 생계 안정을 위해 재정 지출이 시급한 경우’를 추가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대 재정학회장들은 이를 두고 취약 계층 생계 안정이나 양극화 해소라는 요건이 모호하다고 입을 모았다. 추경이 상시화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재정법에서는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 추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재정법은 기본적으로 엄격하게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기준을 넓힌 것은 문제”라며 “국가재정법은 재정 운용의 근간을 정하는 법인데 정부·전문가와의 심도 깊은 논의가 생략된 채 급하게 개정안이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야당의 이번 입법이 정치권의 ‘추경 중독’ 증거라고 본다. 추경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통과됐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반대로 추경이 무산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4월 총선 이후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거론하면서 추경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2년 2월에는 당해 연도 예산안이 결정된 지도 얼마 안 돼 추경이 통과된 사례가 있다”며 “돈을 써보지도 않고 추경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재정 건전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추경의 부작용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줄며 세수 여건은 나빠지고 있는데 저출생·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늘고 있다”며 “본예산도 균형 예산을 맞추기 어려운 실정이라 앞으로의 추경은 부채를 동반하는 추경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염 명예교수는 “정부가 부채를 통해 지출을 늘리면 물가가 자극을 받아 오히려 취약 계층이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시급한 사안이 아닌데도 추경을 습관적으로 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