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다. 어느 날 선생님이 가훈(家訓)을 조사해 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집에 가훈이 없는 한 친구가 부모님 몰래 스스로 가훈을 지어 왔다. ‘착하게 살자’였다. 선생님이 “너희 집 가훈 아니지?”라고 묻자 귀까지 빨개져 당황하던 친구 덕분에 크게 웃었던 생각이 난다.
예전에는 가정이 가훈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집들도 많다. 심지어 요즘 10대들은 “가훈이 뭐예요?”라며 되묻기도 한다. 자녀가 1~2명에 불과하고 1인 가구의 비율도 꽤 높아 더 이상 가훈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추억 한 편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가정에 가훈이 있듯 회사에는 사훈(社訓)이 있다. 사훈은 직원이 지켜야 할 회사의 방침이라고 정의된다. 주로 창업자의 경영 이념이나 창업 당시 직원들의 마음을 담는다. 과거에는 조금 어렵고 딱딱한 사훈이 많았지만 요즘 등장하는 사훈은 밝고 경쾌하다. 하지만 처음 창업할 때, 그때의 절실함을 담은 사훈을 넘어서는 것은 없다는 평도 많다.
‘처음’은 늘 우리에게 신비하고 건강한 힘을 준다. 랜디 포시 교수가 지은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는 먹이 사냥을 위해 맨 처음 바다에 뛰어든 펭귄을 ‘퍼스트(First) 펭귄’이라 부르며 처음의 가치를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첫 아이’를 품었던 부모의 마음, 직장의 ‘첫 출근’, 그리고 가게의 ‘첫 영업일’이 주는 설렘은 웅장한 교향곡의 클라이맥스보다 더 강렬하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모태는 신한(新韓)은행이다. 1982년 7월 7일 첫 영업을 개시한 신한은행은 ‘대한민국 금융에 새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을 담아 이름을 신한으로 정했다.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마침 이번 주가 그룹의 창립 기념일이 있는 주간이다. 직원들과 그룹의 처음을 기억하기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창업 멤버들이 현재 회사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분들의 도전 정신과 개척자 정신은 시대를 관통해 건강한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창업자가 가진 절실함의 절반만 따라가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창업자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에어컨이 시원한 근처 서점에 잠시 들러보면 어떨까. 건강한 여름 나기는 물론이고, 건강한 내 삶을 위한 지혜를 얻는 쏠쏠한 재미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