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의사들의 선택적 자유주의

김능현 사회부 차장





“제빵사가 새벽에 일어나 따뜻한 빵을 만드는 이유는 이웃에게 맛있는 빵을 공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유튜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 유명 피부과 의사가 자신 있게 한 말이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첫 장에 나오는 이야기”라며 제빵사 이야기를 꺼낸 뒤 “의사들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윤 동기가 더 크다”고 했다.

이런 주장이 의사 유튜버 한 명의 입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4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창립 22주년 기념 의료정책포럼이라는 공식 행사에서도 나왔다. 이 행사에서 한 의대 교수는 뜬금없이 일제 식민지, 전체주의, 유신독재까지 거론하며 정부의 의대 증원과 진료 유지 명령을 비난했다. “의사는 의업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환자가 의사에게 집도 줬습니다. 환자와 의사 관계는 사적 관계로서 누군가 개입하는 게 옳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이 두 의사는 모두가 알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스스로 내뱉으며 커밍아웃했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있다. 제빵사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일어나 맛있는 빵을 만드는 이유는 제빵사의 수에 제한이 없어서다. 정부가 제빵사 수를 통제하면 어떻게 될까. 경쟁이 없으니 배짱을 부리며 느지막이 일어나 맛없는 빵을 비싸게 팔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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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서는 이런 주장도 나왔다. “의사의 재산권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가 아닌가. 특정 직역(의사)에 대해서는기본적인 권리조차 유보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역시 말 자체만으로는 옳다. 그런데 의대 증원과 진료 유지 명령이 어떤 재산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진료 행위를 하기 싫다면 의사 면허를 반납하면 될 일이다.

의사들이 그토록 자유주의를 신봉한다면 ‘의대 정원을 아예 없애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 의대만 바라보는 수십만 고등학생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의료 분야에 시장경제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자유주의자의 태도다.

끝까지 탐독하면 알 수 있겠지만 국부론은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진입장벽 없는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논하는 책이다. 의료 시장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곳이다. 이런 특성을 감안해 공공과 민간의 성격을 적절히 섞어 그럭저럭 괜찮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한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의 자유와 이익만 논하는 의사들의 ‘선택적 자유주의’에 국민은 지쳐 간다. 아무리 밥그릇이 걸려 있다지만 반대하려면 논리적 일관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쯤되면 ‘철학의 빈곤’이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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