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시큐로노믹스






최근 영국 노동당이 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원인은 우선 보수당의 경제 실정과 무능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노동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국가 쇄신 비전을 내놓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바로 ‘시큐로노믹스(Securonomics·안보경제학)’다. 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에 오른 레이철 리브스가 지난해 제시한 개념으로 경제 안보와 노동자들의 재정 안전성을 강조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 친노동 정책과 ‘큰 정부’ 기조를 유지하지만 성장 최우선과 기업·시장 친화적인 정책, 민간투자 활성화, 재정 건전성 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통 좌파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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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스 장관은 최근 총선 유세에서 “우리가 한때 알고 있던 세계화는 죽었다”고 진단했다. 세계 무역 정체, 코로나19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진영 간 블록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스스로를 지키려면 국가가 기업과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새 노동당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 전략을 통해 에너지 등 생산적인 부문의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에너지 산업 국유화, 부유세 도입 등 기존의 급진적 공약은 철회했다. 리브스 장관은 “지속적인 경제성장만이 국가의 번영과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큐로노믹스는 기업에 보조금과 감세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현대적 공급 측면 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에 힘입어 일자리가 1600만 개가량 늘었다. 영국은 1960년대 이후 최악의 정부 부채 때문에 공공투자 여력이 제한적이어서 시큐로노믹스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 이어 새로운 중도 노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직은 기대감이 더 큰 상황이다. 한국의 여야 정치권도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권력 싸움에서 벗어나 시대 변화에 맞춰 국가 번영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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