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앉아 밥 먹고 있는 6명도 생각이 다 다를 텐데, 어떻게 171명이 다 같은 생각을 하겠어요?”
더불어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이 최근 민주당의 ‘당론 법안’ 행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개혁 기동대’를 자처한 민주당이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50일 만에 45건의 법안과 탄핵소추안 등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을 두고 나온 불만이다. 이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 당론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다는 우려가 종종 나오지만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당론’이다. 민주당이 개원 직후 이례적으로 많은 법안을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속한 입법이 ‘총선 민심’이라는 이유지만 쏟아지는 법안에 어리둥절한 것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의원들이 모인 단체 텔레그램 방에서 ‘당론 법안이 많아 의원들이 거수기처럼 느껴진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171명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시간 남짓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많게는 20건이 넘는 법안을 다루다 보니 내용 파악조차 힘들다고 답답해하는 이들도 많다. 한 초선 의원은 “소속 상임위원회 법안도 아니고, 내용을 잘 몰라 의문이 생겨도 손을 들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정당 전체의 의견이 한데 모인 산물이어야 할 ‘당론’이 여당을 제압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하지만 ‘기선 제압용’으로만 보기에는 당론을 거스른 대가가 무겁다. 최근 곽상언 의원은 ‘당론’으로 채택된 검사 탄핵소추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에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지지자들의 비난에 시달렸고 결국 원내부대표직을 내려놓았다.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색적 비난을 받는 모습은 당론 채택에 신중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론이라고 해서 ‘다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16일 ‘노란봉투법’ 심사를 위해 열린 소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법안을 의결하자 한 여당 의원은 “민주당 당론이 곧 국회법으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22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의원들의 의견마저 건너뛴 입법 폭주에 허탈해한 셈이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소수 의견을 짓밟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참모습인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