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의 전력 의존도(총에너지 사용량 대비 전력 에너지 사용량)가 철강 등 다른 산업보다 최대 8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2일 발표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전력 수급 애로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전력 의존도는 각각 83%, 85%에 달했다. 반면 철강은 11%, 석유화학은 14%에 그쳤다. 전기 수요가 많은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 인프라를 조속히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7개 첨단산업 특화단지 조성에는 15GW(기가와트) 이상의 신규 전력 수요가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기준 전국 최대 전력 평균 72.5GW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용인 특화단지에는 2030년부터 10GW가 넘는 전력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신규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장거리 송전선로 신축 등 송배전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의 송배전망 구축 사업 42건 중 적기에 준공된 것은 17%인 7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35건(83%)은 지역 주민 반발,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지연 등에 발목이 잡혀 제때 준공되지 못했다. 미준공 사업은 당초 계획 대비 평균 3년 5개월이나 지연되고 있다.
현재 미국 등 주요국들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필수적인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가 대항전으로 전개되는 첨단산업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도 전력망 확충을 위해 총력전을 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어도 송배전망 미비로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및 환경영향평가 특례 등을 담은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정쟁에 밀려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여야 정치권은 미래 성장 동력 점화를 위한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전력망 확충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전기 공급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