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엔비디아서 마이크론까지…대만 '올빼미 정신' 앞세워 AI·반도체 기업 싹쓸이

[인재 대탈출, 코리아 엑소더스가 온다]

2부. 인재 강국의 비결 <상>마이크론 타이중 팹 가보니

폭우 속 HBM 라인 증설작업 한창

정부 전폭지원에 빅테크 투자 쇄도

신입 연봉 1300만원대 불과하지만

마이크론 대만직원 비중 80% 달해

툭하면 파업 '추격자' 韓기업과 대조

올해 6월 대만 타이중시에 위치한 마이크론 팹 F16 인근의 4번 출구 앞. 비 오는 날씨에도 고대역폭메모리(HBM) 라인 증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허진 기자올해 6월 대만 타이중시에 위치한 마이크론 팹 F16 인근의 4번 출구 앞. 비 오는 날씨에도 고대역폭메모리(HBM) 라인 증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허진 기자




그래픽=황정우기자그래픽=황정우기자


지난달 초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라 2시간 30분가량을 달리자 전 세계 3위 반도체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 팹(공장)의 거대한 위용이 나타났다. 마이크론 팹 5번 출구 앞을 찾아가니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형광색 안전 조끼를 입은 건설 노동자 수십여 명이 곳곳에서 분주하게 자재를 나르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이크론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작업을 맡은 인부였다. 마이크론의 타이중 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최초로 5세대 HBM3E를 생산한 곳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협력사 직원 라이틴 슈안 씨는 “최근 1~2년 동안에는 공사 물량이 별로 없었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서버 등에 들어가는 HBM 주문이 늘어나면서 우리도 함께 바빠졌다”고 현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설명했다.



대만이 전 세계 반도체 생태계의 블랙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자국이 아닌 대만에서 최선단 HBM을 생산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미국 정부가 수십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들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HBM만큼은 당분간 ‘메이드 인 타이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마이크론 전체 직원 중 대만 및 아시아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의 비중은 78%에 이른다.

점심시간을 맞은 건설 근로자 일부가 작업 재개에 앞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허진 기자점심시간을 맞은 건설 근로자 일부가 작업 재개에 앞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허진 기자



1970년대 미국에서 창업한 미국 기업 마이크론이 대만에 뿌리를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근면 성실한 인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고용할 수 있는 곳은 대만뿐이기 때문이다. 과거 TSMC가 단숨에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일명 ‘올빼미 부대’라 불리며 24시간 3교대로 일했던 특별팀의 노고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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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도 저렴하다. 지난해 기준 대만 사회 초년생의 연봉 중앙값은 3만 1000대만달러(약 1310만 원)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신입 사원 초봉(5000만 원)보다 훨씬 낮다. 물론 한국과 대만의 국내총생산(GDP) 차이 등을 감안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용만 놓고 보면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TSMC가 세운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최대 320억 달러(약 44조 3000억 원)로 메모리부터 파운드리까지 다루는 종합반도체기업(IDM) 삼성전자와 맞먹는 수준이다.

단순히 생산라인만 대만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니다. 엔비디아는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 243억 대만달러(약 1조 300억 원)를 투자해 AI 혁신 R&D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만 1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AMD 역시 대만에 50억 대만달러(약 2113억 원)를 투입해 R&D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며 마이크론·ASML·인피니언 등도 R&D센터를 확장하거나 신규 구축하고 있다.

대만 타이중시의 마이크론 팹 1번 출구 앞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다. 허진 기자대만 타이중시의 마이크론 팹 1번 출구 앞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다. 허진 기자


물론 글로벌 빅테크들과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에 대만처럼 임직원 연봉을 깎으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메타나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을 앞세워 석박사급 인재들을 싹쓸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반도체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구조적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면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라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 보조금 없이는 솔직히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엔지니어를 홀대하는 문화도 인재 확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종환 상명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메모리에서 잠시 실적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대만은 사회 전반에서 반도체 산업을 우대하고 육성하고 있지만 우리는 의대 중심으로 학제가 재편되면서 인재 전쟁에서 밀리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중=허진 기자·타이중=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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