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부터 혼자서 달리기를 꾸준히 해 온 사회초년생 김모(30)씨는 이달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다. 올 들어 러닝 열풍이 확산되며 대회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기본 5만 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김씨는 “기본 5만 원이 넘는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하기엔 직장인이라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며 “가격 부담이 줄면 2~30대들의 참여율이 더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의 스포츠로 인식됐던 달리기가 최근 2~30대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마라톤 대회 참가비용에도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다. 주요 마라톤을 중심으로 가격이 전년 대비 10% 이상 오르는 추세며 달리기 필수 장비인 러닝화도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부대비용이 일제히 오르면서 달리기가 더 이상 부담 없는 생활체육이 아니게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3대 마라톤’이 쏘아올린 가격 상승세…그래도 접수는 하늘에 별따기
28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오는 9월 29일 열리는 이랜드 주최 ‘뉴발란스 런유어웨이 서울 2024 10km’ 참가비는 지난해 6만 원에서 올해 7만 원으로 올랐다. 국내 양대 하프마라톤 대회로 꼽히는 ‘서울하프마라톤’와 ‘서울레이스’ 참가비 역시 올해 7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일제히 1만 원씩 올랐다.
국내 ‘3대 마라톤’도 역시 가격 인상 행렬에 가담했다. 춘천마라톤은 지난해, 서울마라톤은 올해 각각 10km 코스 참가비를 1만 원씩 올린 7만 원으로 책정했다. JTBC 서울마라톤은 올해부터 1만 원 할인 혜택을 제공했던 사전접수 제도를 폐지하고 본접수만 진행한다.
전년 대비 10%가 넘게 가격이 올랐지만 마라톤 신청은 하늘에 별따기다. 지난달 진행했던 서울레이스, 춘천마라톤 접수는 인원 폭주로 서버가 장애를 일으키면서 접수창에도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서울마라톤은 대회 접수시기를 기존 9월에서 6월로 3개월이나 당겼는데도 모든 코스(10km, 풀코스)가 당일 ‘완판’됐다.
서울레이스 하프(21km) 코스 접수에 실패한 이모(35)씨는“서버가 터져서 아예 접수창에 접근조차 못했다”며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주최 측에서도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닝화도 ‘오픈런’…정가 2배에 거래가 형성되기도
대회는 물론 장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특히 사람들의 수요가 몰리는 유명 러닝화의 경우 ‘오픈런’ 수요가 몰릴 정도로 인기다. 나이키가 이달 내놓은 한정판 최고급 러닝화인 ‘알파플라이3 일렉트릭(정가 33만 9000원)’ ‘알파플라이3 블루프린트(정가 32만 9000원)’는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으며 현재 리셀 플랫폼에서 평균 40만 원 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5일 출시한 아식스 ‘파리 시리즈’ 역시 발매와 동시에 1만 명에 달하는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됐다. 러닝화계의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스웨덴 ‘온러닝’ 역시 품귀 현상의 중심에 섰다. 올해 5월 출시한 ‘클라우드몬스터2(정가 27만 9000원)’은 평균 40만 원대, 최고 6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마라톤 가격은 오르는데 품질은 그대로…중장년 소외도 문제
달리기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경부터 집합금지 조치를 피해가면서도 돈을 아낄 수 있는 ‘가성비’ 운동으로 급부상했다. 이어 ‘위드 코로나’가 본격화되자 러닝크루 문화와 기안84 등 인기 연예인들의 영향에 힘입어 국민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패션업계에서는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러닝화, 대회 등 부대비용이 오르면서 ‘가성비 운동’이란 말은 옛말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가상승률과 치솟는 인기를 감안할 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서버 에러가 속출했던 서울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신청 실패자가 잇따랐던 것은 물론 수천만원이 중복 결제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면서 비판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주최사 측은 서버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포스팅을 몇 주 뒤 돌연 삭제하면서 러너들과 ‘기싸움’을 한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달리기 대회 11km 코스(남자) 입상자인 임이민영(36)씨는 “주최 측은 마라톤 대회 운영 경험이 많은 곳인 데다가 지난해에도 대회 접수 관련 비슷한 잡음을 일으킨 바 있다”이라며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그냥 단순히 ‘일을 대충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높아진 인기에 대회 접수가 어려워지며 기존 수요층이었던 중장년층이 소외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마라토너 A(54)씨는 “최근 동호회를 나가면 특히 5~60대 이상 회원분들로부터 마라톤 접수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자자하다”며 “서버를 확충하는 것은 물론 선착순 접수인 현 방식을 추첨제 등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