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벤처 투자 금액이 약 2조 7000억 원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당시 글로벌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쳤던 2021년과2022년을 제외하면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많은 수준이다. 벤처 투자 회복세는 인공지능(AI), 로봇, 미래형 모빌리티 등 아직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미래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소위 ‘딥테크’ 산업이 이끌었다. 민·관 합동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를 딥테크 산업에 한정해 확장한 ‘딥테크 팁스’와 같은 정부의 육성 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스타트업 대상 투자 금액은 2조 6754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2조 2524억 원과 비교해 18.8% 늘어났다. 같은 기간 펀드 결성액도 1조 9531억 원에서 2조 3504억 원으로 20.3% 증가했다. 벤처 투자액 증가는 엔데믹 전환 이후 투자 감소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스타트업에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났음을 의미하고 펀드 결성액 확대는 앞으로 벤처캐피털(VC)이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자금이 증가했음을 뜻한다. 이번 통계는 VC를 구분하는 기준 중에서 ‘신기술사업금융업자’는 제외하고 ‘벤처투자회사’만 포함해 전체 투자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투자 활황을 이끈 것은 딥테크 산업이다. 딥테크 스타트업은 올 상반기 1조 2447억 원의 투자금을 받아 지난해 상반기 6932억 원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AI(487억→2664억 원) △친환경 기술(613억→1547억 원) △클라우드·네트워크(428억→1279억 원) △로봇(735억→1272억 원) △시스템반도체(499억→911억 원) 등의 투자가 크게 늘었다. 한때 활황을 맞았던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가 3816억 원에서 3545억 원으로 소폭 줄었지만 다른 유망 분야가 이를 상쇄했다.
딥테크 산업 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배경에는 주무 부처 중기부의 ‘핀셋 정책’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딥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딥테크 팁스가 대표적인 예다. 민간 투자를 받은 기업에 정부가 추가 자금 지원을 하는 팁스 사업을 확장한 딥테크 팁스는 최대 15억 원까지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팁스 최대 지원금인 10억 원보다 많다. 딥테크 산업 제품은 상용화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고 개발 난도도 높다는 점을 감안했다.
실제 시스템반도체 기업 티에스엔랩 등 기술 기업이 딥테크 팁스 지원을 받아 제품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2021년 설립된 티에스앤랩은 지난해 딥테크 팁스 대상 기업에 선정돼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약 1년의 기간 동안 다른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이나 영업 등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차세대 통신표준(TSN) 전송 기능을 갖춘 통신 반도체에 AI 추론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김성민 티에스엔랩 대표는 “3년 동안 연구개발만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술 기업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중기부는 이달 들어 ‘초격차 AI 스타트업 레벨업 전략’을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상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소형언어모델(sLLM), AI 반도체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AI를 활용한 제조·헬스케어·콘텐츠 산업도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국내에 있는 점을 활용해 이들과의 개방형 혁신을 유도하고 이후 해외 진출까지 지원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27년 국내 AI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 3곳, AI 투자 규모 1조 원, 글로벌 AI 산업 순위 3위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기부는 최근 서울 홍익대 권역에 조성하는 ‘글로벌 창업 허브’를 딥테크 산업에 특화해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혁신 생태계 거점인 글로벌 창업 허브에서는 국내외 대기업, 스타트업, VC가 한 데 모여 투자, 사업 연계를 통한 동반 성장을 이뤄낼 전망이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딥테크 스타트업은 전세계 인재와 자본을 끌어모으며 기술 혁신을 주도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핵심 주체”라며 “정부에서도 글로벌 창업 허브 신규 조성 등 관련 지원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