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넘쳐난 중국산이 삶을 망쳤다’…무너진 아메리칸드림, 무역질서 뒤흔들다 [Datareport]

트럼프 공화당 후보로 백악관 재입성 도전

‘관세맨’ 2기 행정부서 ‘무역전쟁’ 2차전 예고

2000년대 中 WTO 가입 후 美 무역적자 급증세

제조업 강국 불렸지만 제조업 일자리는 ‘뚝뚝’

중국산 수입 노출로 150만 개 근로자 직격탄

2017년 취임 후 대규모 관세 부과 시작했지만

경제학자 “잘못된 진단, 단순한 처방으로 실패”

국내 여론 일자리 보호 위해 무역 규제 찬성 많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2017년 1월 20일에 미국에서 있던 일입니다. 한 남성이 연단에 올라섭니다. 청중들의 큰 환호가 이어집니다. 남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소수 집단이 정부 혜택을 누렸지만 국민들은 그 비용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번영했지만 일자리는 없어지고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뀝니다. 바로 여기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누군지 짐작하시겠나요. 바로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이날은 그가 45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입니다. 취임 연설의 포인트는 ‘아메리칸 퍼스트’, 미국 우선주의입니다. “이 순간부터는 미국이 우선이 될 것입니다. 미국산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세요.” 트럼프는 선언했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섭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미국 우선주의’는 그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그가 대통령 시절 추진했던 고관세 정책을 이번에도 다시 꺼내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우려하는 시각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그만큼 많은 지지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미국의 무역 문제를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들은 어떤 상황에 있기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이슈화한 것일까요. 관련 문제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3월 미국의 ‘러스트벨트’ 지역인 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에서 GM 표지판 아래 ‘구해줘’(save me)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AP연합뉴스2019년 3월 미국의 ‘러스트벨트’ 지역인 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에서 GM 표지판 아래 ‘구해줘’(save me)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AP연합뉴스


◇자유무역이 번영을 낳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국가 간 자유로운 무역이 번영을 이끈다고 설명합니다. 각 국가들은 산업을 특화하고 여기서 나오는 재화들을 서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전체 부가 늘어난다는 논리인데요.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개별 국가들의 환경은 모두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가령 인건비가 싸다든지 토지가 저렴하다든지 천연자원이 풍부하든지 상대방과 비교했을 때 우월한 조건이 있다는 것이죠. 이걸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비교우위에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의 분야에 집중하는 대신 추후 서로 교환하는 게 한 나라가 모든 것을 만드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설명입니다. 절대우위가 아닌 비교우위로 표현하는 것은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나뉘는 스포츠와 같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래 그림은 경제학개론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의 설명입니다. 많은 가정들을 제외한 가장 기본적인 그래프로 보면 될 거 같은데요. 교역이 없을 때(왼쪽), 교역 이후 수입국(오른쪽)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길게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살구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총 잉여’라고 합니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 균형을 달성한 수준에서 소비자와 공급자가 누리는 이득의 총합을 도식으로 표현한 것 정도로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무역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시죠. 무역 이후 해당 면적은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 부분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이를 통해 전체 이익이 늘어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무역 후 후생이 늘어났다는 표현은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무역을 했더니 적자가 쌓여갔다?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은 현실에 어느 정도 부합할까요? 아래 그림을 보시죠.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무역수지 그래프입니다. 미국의 수출액과 수입액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수입이 수출보다 많은 이른바 적자입니다. 시기별로 보면 1960년대 35억 800만 달러 흑자에서 1970년대부터 마이너스 영역으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점점 더 아래로 향하다 2000년대 들어 수직 하강하는 모습이죠. 그러다 2022년 9448억 달러로 무역수지 최대의 적자를 기록합니다. 지난해 -7848억 9000만 달러로 적자 규모가 소폭 줄긴 했습니다.

미국의 통상 환경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는 불리는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대표적인 사건들인데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이들 이벤트 후 점점 더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와의 무역에서 가장 많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까요. 단연 중국입니다.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2022년 3662억 달러에 이릅니다. 2000년 815억 달러 적자에서 급격하게 불어납니다.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 입장에선 전례 없는 충격으로 표현되는데요. 이렇듯 수년 간 누적되는 무역적자 탓에 미국 내에서 불만은 커지기 시작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미국이 손해만 보고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급증한 중국산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어갔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제조업 고용자 수를 월간 단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990년 1월 1780만 명이었던 제조업 고용자는 2000년 들어 급격히 줄기 시작합니다. 결국 2010년 2월 1145만 명까지 빠집니다. 감소 폭은 35.7%입니다. 이후 회복세를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나아졌다고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해고와 실업은 불가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했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와 관련한 유명 논문이 있습니다. 2013년에 나온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것인데요. ‘차이나 쇼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경제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MIT의 데이비드 오토 교수가 취리히대학의 데이비드 돈 교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의 고든 핸슨 교수 등과 함께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1990~2007년 미국 내 지역 노동시장과 중국산 수입품 증가의 관계를 보여준 것인데요. 결론은 중국발 무역 충격으로 미국 내 일자리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겁니다. 저자들은 중국의 수입품 증가로 1990~2000년 54만 8000명, 2000~2007년 98만 2000명 제조업 근로자가 줄었다고 추산했습니다. 총 153만 개 가량입니다. 아래 그림은 이를 지역별로 나타낸 것인데요.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 충격이 컸던 지역입니다.

자료 : 데이비드 오터 등의 ‘차이나쇼크’ 논문을 월스트리트저널이 재구성한 것을 인용자료 : 데이비드 오터 등의 ‘차이나쇼크’ 논문을 월스트리트저널이 재구성한 것을 인용


이번 대선 트럼프 러닝메이트로 나서는 ‘힐빌리’(시골내기) JD밴스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자랐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온 마음을 다해 신, 가족, 지역,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의 지배계급에 의해 무시되고 잊혀진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중략)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조 바이든이라는 이름의 그 직업 정치인이 중국에 유리한 무역 협정을 제안했는데, 그 협정은 미국의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를 더욱 파괴했습니다. 오하이오 제 작은 마을이나 바로 옆인 펜실베이니아나 미시간, 그리고 전국의 다른 주에서, 그 과정의 각 단계에서 일자리는 해외로 옮겨갔습니다.”

물론 정치인의 발언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러스트벨트’ 출신 밴스의 발언은 해당 지역민들의 정서를 일정 부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부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이 파괴된다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요. 2016년 ‘정치 이단아’로 불리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이끈 선거 결과는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아래는 뉴욕타임스(NYT)에서 2016년 대선 결과를 지역별로 표시한 것인데요. 빨간색이 공화당 승리 지역, 파란색이 민주당 승리 지역입니다. 위의 논문 그림과 한 번 비교해보시죠.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료=뉴욕타임스자료=뉴욕타임스




◇트럼프, 고관세 대응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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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2017년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대응에 나섭니다. 관세 인상이 핵심입니다. 2017년 6월 181개 품목에 대한 중국산 수입품에 특별 관세 25%를 부과합니다. 같은 해 8월 통상법 301조(슈퍼 301조)를 발동해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사하고 이후 점점 전방위적으로 무역 규제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피터슨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산에 부과하는 관세율(무역 비중을 감안한 평균 관셰)는 2018년 1월 3.1%였습니다. 이후 이 숫자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해 현재 19.3%에 이릅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8.0%에서 21.1%로 높아졌습니다. 관세를 관세로 맞받아친 것입니다. 무역전쟁, 관세전쟁이라고 불린 까닭입니다.



◇무역 전쟁의 승자는 누구?

무역 전쟁 결과는 어떨까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의 무역수지는 2022년 최대치를 기록합니다. 제조업 근로자수 역시 마찬가지죠. 회복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만 봐도 애당초 원했던 목표를 달성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세 부과로 미국인들의 비용 부담이 늘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관세는 세금입니다. 물품에 세금을 올리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합니다. 생산자는 세 부담을 혼자 짊어지지 않습니다. 2023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철강, 알루미늄 및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1% 인상될 때마다 가격이 약 1%씩 상승했다고 추정합니다.

폴 크루그먼 등이 쓴 국제경제학 교과서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옵니다. ‘보호무역주의로 회귀’라는 논문을 인용한 부분인데요. 설명은 이렇습니다. 소비자는 높아진 비용을 감내해야 합니다.(소비자잉여 감소) 하지만 생산자들은 이익을 얻어가는 부분이 생깁니다.(생산자잉여 증가) 정부는 세수가 늘어납니다.(관세 수입 증가) 이를 다 합한 총 잉여의 손실은 연간 164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석 대상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보복관세로 피해를 입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높아질 것입니다. 미국의 ‘텍스 파운데이션’이라는 단체가 트럼프-바이든 행정부의 관세 영향을 추정한 것이 있는데요. 이들 단체는 높아진 관세로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0.2%, 정규직 일자리 14만 2000개가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합니다. 이런 근거들을 토대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미국은 왜 무역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나?

그렇다면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발단은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입니다. 수년 간 이어진 무역적자는 잘못됐다, 그래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카드가 관세입니다. 문제는 이 무역적자가 그렇게 쉽게 볼 사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수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을 한번 생각해보죠. 국내 소득이 있을 겁니다. 국내 소득이 늘어나야 수입이 늘어납니다. 이 소득 증가 부분도 한번 따져봐야 할 겁니다. 경제 성장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고, 이자 수익, 자본 차익 등 투자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수입이 무한정 들어올 순 없습니다. 화폐 가치도 있습니다. 가지고 있던 화폐 가치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해외 수입품 값이 떨어지는 효과를 누립니다. 이 과정에서 수입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됩니다. 수출은 반대 논리입니다. 수출이 늘려면 외국의 소득이 증가해야 합니다. 자국의 화폐 가치가 떨어져야 수출을 늘리는 데는 유리합니다.

환율 부분만 한번 보겠습니다. 무엇이 환율을 결정하는지 여러 견해들이 있죠. 다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재정적자입니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증가하면서 달러의 힘이 커졌고 그 과정에서 무역적자가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전 기사에서 언급한 적 있는데요. 논리는 이렇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이 이루고 이때 수량과 가격이 결정된다고 설명합니다. 대부(자금)시장도 같습니다. 여기서 공급은 저축, 수요는 투자입니다. 이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데 이것이 곧 이자율, 금리입니다. 금리는 돈에 대한 가격입니다. (*5월 18일 “초저금리 시대 끝났다”…빚더미 사회 ‘폭탄’ 터지나 [Datareport])



정부 재정적자가 커진다고 생각해보죠. 이는 곧 정부저축 감소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여윳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총저축 감소로 이어집니다.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의 합이 총저축입니다. 총저축 감소는 공급 곡선을 왼쪽(S1→S2)으로 이동시킵니다. 이후 수요 곡선과 만나는 지점의 금리는 이전보다 높습니다. 총저축 감소로 금리 인상을 유발한다는 설명은 여기서 나옵니다.

금리가 오르면 자금의 유입 요인이 생기는 것입니다. 투자할 때 기대하는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자금들이 특정 국가로 흘러가면 그 나라의 화폐 가치는 상승합니다. 높아진 화폐 가치는 다시 무역적자로 이어집니다.

결국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총저축 감소→금리 상승→달러 강세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아래는 미국 달러의 실질실효환율(무역 가중치를 반영한 상대환율)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2010년 100을 기준으로 합니다.

사실 여기서 끝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 등까지 생각해야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인상이라는 카드 하나만을 꺼낸 것은 과연 적절했을까요. 의문이 제기됩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공격이 헛발질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분석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순수출(NX)=저축(S)-투자(I)’라는 식 하나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미국인들도 무역 규제 찬성한다?

다만 실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 행정부의 고괸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무역적자가 단시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다 자국 내 지지하는 여론 또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소재라는 사실도 이런 전망에 힘을 더합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에서 지난해 32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일자리 보호 위해 수입 제한을 동의하는지를 물었습니다. 66%가 동의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대는 32%입니다. 특히 공화당원들의 동의 비율은 79%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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