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8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의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계획’에 대해 “현장을 알지 못하는 정부의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이날 발표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전문인력 중심 병원 추진에 대한 의견서’를 내 이같이 주장했다. 비대위는 의견서에서 “현장에서는 의학지식과 연구역량을 갖춘 전공의의 부재와 전문의의 감소로 심각한 진료의 질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며 “전공의 대신 진료지원(PA) 간호사가 진료에 참여하는 것이 전문인력 중심으로의 긍정적인 변화라고 여기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지난 6일 상급종합병원 내 중증환자 비중을 3년간 60%까지 늘리고 일반 병상 규모를 감축하는 등의 구조 전환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을 중증환자 중심 구조로 만들고 전공의의 역할은 전문의와 PA 간호사 등으로 대체하는 ‘전문인력 중심병원’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비대위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1·2차 의료기관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구축·운영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수가 체계를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 전환이 단순하게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을 줄이는 게 아닌 1·2차 의료기관과 협력을 통한 환자의 건강상태 향상에 목적을 둬야 한다는 게 비대위의 주장이다. 이에 최근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이 줄어든 데 대해 “복지부는 긍정 평가하지만 이는 진료역량 축소로 인한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제시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수가 및 보상체계 개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진정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중증·희귀질환 진료기관, 교육수련 기관으로서 역량 유지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면밀히 추산해 투입해야 한다”며 “일반 병상 수 감축, 중증 비율 상향 조절이라는 목표를 강제하는 대신 의료수가와 보상체계 개선을 통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돼야 검사와 약 처방, 시술·수술 뿐 아니라 충분한 상담과 교육, 다학제 진료가 가능하다는 애기다. 아울러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2025년에 새로운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을 것을 고려할 때 지역 의료의 붕괴를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위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상급종합병원은 중증·난치 질환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이며 이용 여부는 소비자가 아닌 의사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없이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를 이루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일한 질환이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중증·급성기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회복·만성기에는 1·2차, 지역 의료기관에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대위는 의료개혁특위에 의료계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먼저 특위의 논의 내용과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의사 결정 기구 회의는 생중계나 속기록 등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