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068270)과 셀트리온제약(068760)이 합병 작업을 중단했다. 주주들의 반대로 합병이 중단된 첫 사례다. 셀트리온제약 주주 대부분은 합병에 찬성했지만 셀트리온 주주들은 기권을 포함해 96%가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셀트리온그룹이 실시한 내·외부 평가에서도 합병 시너지가 적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시 자금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나왔다.
셀트리온그룹은 16일 ‘합병 추진 여부 검토 1단계 특별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토대로 양 사 이사회가 현시점에서는 합병을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주주 설문 조사’를 비롯해 회계법인의 외부 평가, 글로벌 컨설팅사가 참여한 내부 평가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 결과 셀트리온 주주들은 합병 여부에 대해 찬성 8.7%, 반대 36.2%, 기권 55.1%의 의견을 보였다. 다수 의견에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등 대주주 지분을 합산한다는 원칙을 반영하면 찬성 4.0%, 반대 70.4%, 기권 25.6%다. 기권을 포함해 96%의 주주가 합병에 찬성하지 않은 셈이다. 반대 의견을 낸 주주들의 58%는 ‘현재 양 사 합병 비율이 만족스럽지 않다’, 21%는 ‘자회사로 합병 시 실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양 사 시가총액이 13.6배, 영업이익이 17배(지난해 말 기준) 차이 나는 반면 현재 주가는 2.6배밖에 차이 나지 않아 셀트리온제약의 가치가 고평가돼 있고 이에 따라 합병 비율을 산정하면 셀트리온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 주된 반대 이유였다.
이처럼 압도적인 반대 의견은 향후 셀트리온 주주들의 주식 매수청구권 행사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식 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회사 측에 자신의 보유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사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다. 더 많은 주주들이 반대할수록 회사의 자금 부담도 커진다. 셀트리온이 지난해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합병을 추진할 당시 책정한 주식 매수청구권 한도는 1조 원 수준이었다. 이번 셀트리온제약 합병 때는 이를 크게 초과하는 비용이 발생하고 셀트리온의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국내 인수합병(M&A) 대부분이 대주주 이익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반면 일반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합병을 철회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셀트리온은 주주들의 의견 취합은 물론 외부 회계법인과 컨설팅사 조사 등을 통해 합병 추진 시 예상되는 재무·비재무적 위험과 시너지 등을 평가했다. 합병 추진 여부를 검토한 이재식 셀트리온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양 사 합병 추진 결정이 주주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검토가 필요함을 인식해 특별위원회 설치를 건의했다”며 “각 분야 전문가들이 심도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도출한 결론을 이사회에 제출했고 이 같은 의사 결정 과정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셀트리온그룹이 3사 합병을 추진한 것도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에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제품 생산 및 개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해외 유통, 셀트리온제약은 바이오시밀러 국내 판권 보유 및 합성 의약품 판매를 담당하고 있었다. 법인 한 곳이 영위해도 충분한 사업을 3개 기업에 분산해 두며 실적이 과다 계상되고 ‘일감 몰아주기’라는 주주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이뤄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은 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이뤄졌지만 셀트리온제약 합병에는 제동이 걸린 것이다.
셀트리온그룹은 중장기적으로 셀트리온제약의 실적 및 주가를 부양한 뒤 추후 합병을 재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셀트리온제약 이사회는 이날 “합병에 따른 사업 시너지가 다수 있지만 현 시점에 합병 추진은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며 “현재 추진 중인 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해 빠른 시일 내 기업 가치에 부합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셀트리온그룹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합병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양 사 이사회의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양 사는 이제 본업에 집중해 성장과 그룹 내 시너지 창출에 더 몰두할 계획”이라며 “양 사 주주 이익이 수반되는 통합은 주주가 원하면 언제든 검토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주주 의견에 귀 기울이고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해 성장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